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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런 상황에서 배 안 아플 자신 있어?

한 발자국 차이로 놓친 성공과 그 후의 이야기

오늘도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요즘 뜨는 마인드맵 전문가의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 유퀴즈에도 나왔단다. 스크롤을 내리다 문득 배가 아파왔다. 나도 분명 그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가 되지 못했다. (각색된 내용입니다. 정확히 주제를 말하면 그 사람이 떠오를 것 같아서요 ㅎㅎ)


나와 그의 거리, 한 발자국

사람들은 누구나 마인드맵에 관심 있어 한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한다. 나는 그것을 알았고, 강의장에서 수년간 가르쳐 왔다. "이렇게 해보세요. 반복하는 과정에서 실력이 늘거예요." 매번 이런 말을 했다. 투박한 복주머니를 던지듯 팁만 흘리고 끝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같은 지식을 가졌지만, 단계별 가이드와 친절한 설명서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그 디테일이 한 발자국의 차이를 만들었다.

"조금만 더 파면 다이아가 나온다"는 그림이 생각났다. 포기한 광부는 다이아까지 한 삽만 더 파면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한 삽을 파지 않았다. 왜일까?


디테일, 내가 외면한 불편한 진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디테일한 가이드를 만드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상세한 프로세스와 단계별 매뉴얼은 나에게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대충 개요만 알려주고 "각자 알아서 발전시켜 보세요"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원하는 건 더 명확했다.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요?",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나요?" 이런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나는 더 깊이 들어가기보다 다시 표면적인 조언만 반복했다.

그 불편함을 피한 대가는 컸다. 매체는 그를 불렀고, 그의 책은 서점 진열대를 채웠다. 내 지식은 강의실 안에만 머물렀다.


아픈 배, 정직한 신호

가끔 배가 아프다. 특히 그의 인터뷰를 볼 때면 더 그렇다. 이 배 아픔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내 안의 정직한 신호다. "넌 할 수 있었어. 그런데 하지 않았지."

나는 과연 준비가 된 사람이었을까? 똑같은 지식을 가졌다고 해서 똑같은 준비가 된 것은 아니었다. 준비란 불편함을 견디는 것도 포함한다. 디테일을 챙기는 수고로움, 반복해서 설명하는 인내심,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겸손함. 그 모든 것이 준비의 일부였다.

배 아픔의 자격? 그건 있다. 그 아픔은 내가 놓친 기회를 인정하는 정직한 감정이니까.


다시 파기 시작한 삽

요즘 나는 조금 변했다. 강의 자료를 만들 때 더 상세한 가이드를 작성한다. 단계별 프로세스를 시각화하고, 예상되는 질문들에 미리 답을 준비한다. AI 도구를 활용해 예전에는 귀찮았던 디테일을 더 쉽게 챙기고 있다.

SNS에 글도 올리기 시작했다. 소소한 팁보다는 단계별 프로세스를 시각화한 게시물을 올린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다.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설명해야 할까? 그런데 댓글이 달렸다. "드디어 이해했어요", "정말 도움이 됐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배 아픔이 사라졌을까? 아니, 여전히 가끔은 아프다. 하지만 그 통증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다이아까지 한 삽만 남았던 그 광부처럼, 나도 다시 삽을 들었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여정, 디테일의 세계로

다음 달부터는 내가 하는 강의에서 구체적인 적용법을 다룬 시리즈를 시작할 예정이다. 마인드맵으로 예를 들자면, 연습장을 어떻게 배치하는지, 펜은 무엇을 쓰는지, 첫 번째 키워드를 어디에 배치해야 효과적인지까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디테일의 세계로 들어가려 한다.


어쩌면 이렇게 디테일을 챙기는 습관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매체가 나를 부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온전히, 가감 없이 나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신도 한 발자국 차이로 놓친 기회가 있나요?

그때 배가 아팠나요?

그 아픔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혹은 아직도 아픈지 댓글로 이야기해 주세요.

다음 편에서는 '디테일'을 잘 챙기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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