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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의 침묵

by 박코치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소통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우신 게 언제입니까?” 박 코치가 이 대표에게 물었다. 이 대표는 자신이 상무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신입사원이 입사 일 년이 되었을 때 근무 만족도 조사를 했다. 제대로 교육을 받고 있는지, 부서 분위기는 어떤지, 현재 부서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조사였다. 조사 결과가 나쁜 정도를 넘어 심각했다.


회사는 전국에 영업망을 갖고 교사를 파견해서 초등학생에게 학습 지도를 하는 사업을 했다. 신입사원도 현장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부서에 배치된 후 6개월 간 자신의 업무와 영업 실습을 병행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배정된 지점에 출근해서 영업 실습을 해야 했다. 실습이지만 영업 목표도 있어서 압박이 심했다. 집에서 먼 곳에 배치를 받아 통근이 힘든 경우도 있었다. 소속부서에서는 실습은 실습이고 업무는 업무대로 하라는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신입사원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점을 넘지 못했다.


만족도 결과를 보고 받고 김 회장은 이 상무에게 신입사원과의 간담회를 소집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이 상무는 인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창업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 경영인이었다. 오랜 대기업 CEO 경험을 가진 분으로 합리적이면서도 불같은 카리스마가 넘쳤다.


이 상무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입사원들도 당황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설문에 답하라고 해서 했는데 회장과 간담회까지 하게 되었으니 잘못한 건 없지만 찜찜했다.


신입사원 20명이 모인 회의실에 김 회장이 들어섰다. 소탈한 성격답게 A4지 한 장만 달랑 흔들며 나타났다. 이 상무도 회의 테이블 끝에 앉았다.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시작했다. “그래... 벌써 입사한지 일 년이 되었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모양이던데 한 사람씩 얘기해 보지. 자네부터 시작해 볼까?” 오른쪽에 있는 A사원을 쳐다보았다.


A는 폭탄을 맞은 표정이 되었다. 갑작스럽기도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거 같아 보였다. 아무 말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것이 울음이라도 터뜨릴 거 같았다. 정적 속에서 1분쯤 흘렀을까. 김 회장은 다시 “음, 그래. 준비되는 대로 얘기해 봐.” 하고는 다른 사원들을 훑어보았다.


그래도 A는 말을 시작하지 못했다. 다시 1분이 지났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당황스럽기 만한 눈치였다. 이 상무는 자신이 뭐라도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침묵이 불편했다. 하지만 말을 꺼냈다가 김 회장 성격으로 보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거 같았다.


회장은 살짝 미소까지 띄고 A4지에 낙서라도 하는지 펜으로 뭘 끄적거리다가 신입사원들을 바라보다가 하면서 A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생각났다는 듯이 “그래. 편하게 얘기해 봐.” 했다. 전혀 초초해 하지도 답답해하지도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3분쯤 되었을 때 A는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는 거 같았다. 드디어 A가 “어...” 하고 침묵을 깼다. 회장은 “그래, 그래. 얘기 해 봐.”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A의 발언은 길지 않았다. 회장은 A사원 옆에 앉은 B사원을 지목했다. B가 이야기한 후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상무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


“3분의 침묵이라... 담당 임원으로서 불편한 자리였겠네요.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박 코치가 질문했다.

“제가 부하직원의 말을 진정으로 들으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반성했습니다.”


조직에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하려면 아랫사람의 말을 듣겠다는 윗사람의 강한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윗사람이 부하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는 것에 비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솔직한 생각을 얘기하는 것은 열 배쯤은 힘들기 때문이다. 소통의 노력은 쌍방이 1:1이어야 원활하다. 하지만 상사 대 부하의 노력은 현실에서 1:10이니 부하가 좀 더 노력한다고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윗사람은 편하게 말하라고 하지만 부하직원은 윗사람이 어렵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이지 친정어머니가 아니다. 상사가 학교 때부터 친한 선배라고 해도 상사는 상사이다. 상사가 더 노력해주지 않으면 힘들다.


김 회장의 기다림은 소통하려는 의지였다. 김 회장은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A를 채근하지 않았다. A가 말을 기다린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말을 채워 넣지도 않았다. 김 회장은 침묵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다. 침묵을 말로 채운다고 소통은 아니다. 때로는 소통을 위해 침묵이 필요하다.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소통의 의지를 보여준다. 나는 꼭 그대의 생각을 듣고 싶다는 의지이다.


우리 시대의 보통 관리자인 C팀장의 모습을 보자. C팀장이 자신의 다면평가 결과를 받았다. 평가 내용에 ‘소통이 부족하다’, ‘직원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하는 평이 있는 걸 발견했다. 즉시 팀원 회의를 소집했다.


“여러분들이 우리 팀은 소통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 같네. 어디 할 얘기가 있으면 해 봅시다.” 5초가 지났다. “힘든 거나 내가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편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다시 5초가 지났다. “요즘 일이 많아서 힘들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내가 신입사원 때는 말이죠...” C팀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10분쯤 늘어놓았다. “할 얘기들 없어요? 할 얘기 있으면 나중에 언제라도 해 주세요.” 결국 이야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회의는 끝났다.


C팀장은 옆 팀 D팀장과 커피를 한잔 했다. “요즘 직원들은 소통이 없다고 하면서 얘기를 시키면 말을 안 해, 말을. 그러면서 소통이 없다고 한단 말이야.”


구성원의 쓴소리를 듣겠다는 리더의 의지는 무엇보다 이후의 실행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김 회장은 간담회가 끝나고 이 상무를 불렀다. “이 상무, 아까 사원들이 얘기한 거를 검토해서 바로 실시할 수 있는 거, 안 되는 거, 검토해 볼 거로 나눠서 정리해 봐. 정리되는 대로 신입사원들에게 얘기해 주고. 그리고 실시한 것과 검토된 내용을 나한테 매주 보고해.”


일 년 후 간담회에 참석했던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다시 만족도 조사를 했다. 평점이 4점을 넘었다. ‘간담회 때 제안이 하나씩 실행되는 것을 보면서 입사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는 코멘트가 있었다.


이 대표는 이후에 직원들과 소통이 어렵다고 생각될 때면 그때 김 회장의 침묵을 되새겨 본다고 박 코치에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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