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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코치 Dec 20. 2021

'솔직하다'는 신호

블라인드(blind) 채용이라는 게 있다. 서류심사, 필기시험, 면접 등의 채용과정에서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외모 등의 항목을 밝히지 않고 지원자의 실력, 즉 직무능력만을 평가하여 인재를 채용하는 방식이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에서 실시하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 블라인드 채용은 힘든 방식이다. 학력과 출신학교는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이라고 모두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니고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고 해서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학력과 출신학교는 능력을 판단하기 위한 일차적인 정보이다.


경제학에 ‘신호 이론’(signalling theory)라는 용어가 있다. 직원을 채용할 때 고용자인 회사와 피고용자인 후보자가 갖는 정보의 차이가 존재한다. 즉, 고용자는 후보자의 능력에 대해 고용자 본인만큼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을 좁히기 위해 후보자는 자신의 능력을 알려줄 수 있는 신호를 보낸다. 이력서에 기술하는 자신의 학력, 출신학교와 리더십 활동 같은 내용이 이런 신호에 해당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는 이 연구로 2001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세상은 신호로 가득 차있다. 수컷 공작새가 화려한 꼬리를 펴서 암컷을 유혹하는 것은 잘 알려진 신호이다. 숫사슴의 큰 뿔은 영양상태가 좋고 전투 능력이 뛰어난 우수한 수컷임을 암컷에게 광고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멋진 스포츠카에서 내리며 하차감을 자랑하는 것이나 고급 호텔에 갈 때 명품 가방을 들고 가는 것도 신호이다.


##


여기 김 전무와 이 상무가 보내는 신호에 주목해 보자. 이들 신호는 무엇이 다른가?


박 대표는 몇몇 임원과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옆자리에 김 전무가 앉았다. 그는 자기 자랑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식사하는 내내 김 전무는 박 대표에게 자신의 부서의 성과를 이야기했다.


사실 박 대표는 며칠 전 인사팀장에게 김 전무가 맡고 있는 사업본부의 A팀장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A팀장이 팀원들을 너무 몰아붙여서 열 명 팀원 중에 네 명이 사직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식사가 마무리되어갈 때 박 대표는 김 전무에게 조용히 물었다.


“김 전무 본부 직원 중에 속 썩이는 친구는 없습니까?”

“그런 친구 없습니다. 다들 열심히 합니다.”

“그래요. 좋네요. 지금 본부 직원이 몇 명이나 되지요?”

“백 명 조금 넘었습니다.”

“본부 직원이 백 명이 넘는데 문제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대단하네요.”


김 전무의 얼굴이 붉어졌다.


퇴근이 가까워졌을 때 이 상무가 보고할 게 있다고 들어왔다.


“대표님, B사가 우리와 거래를 끊을 거 같습니다.”

“가격 갖고 힘들게 하더니 결국 그렇게 되나요? 거래를 중단하는 걸로 최종 결정됐습니까?”

“아직 아닙니다. 신제품을 1년간 독점 공급하는 걸로 설득하고 있습니다. 쉽게 풀리지 않을 거 같아서 말씀 드렸습니다.”

“신제품 독점 공급 아이디어 좋네요. 필요하면 B사장을 같이 만나 봅시다. 미리 얘기해 줘서 고맙습니다.”


##


조직에도 신호가 만연하다. 가장 빈번한 신호는 자신의 능력이나 성과에 대한 자랑이다. 김 전무처럼 말이다.


부하가 자신의 일에 대해 자랑하는 것은 상사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신호를 받는 사람, 즉 상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듣는 상사는 부하가 자랑거리만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랑이 많은 사람은 문제점이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를 숨기고 있지는 않지만 밝히지는 않고 있을 수 있다. 자랑만 하고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으면 문제를 키우게 된다.


상사에게 부정적인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 상무는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일을 털어 놓는 행동은 ‘나는 숨기는 것이 없습니다.’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즉, 상사에게 ‘나는 솔직하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문제나 부정적인 상황을 밝히면 문제가 커지기 전에 미리 대처할 수 있다. 상사들은 문제나 부정적 상황을 알리는 부하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부하를 더 신뢰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하들에게 팁을 하나 드리겠다. 상사에게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해결 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불타는 의지를 보이면서 반드시 같이 이야기하시라. 이 상무처럼 하면된다. 박 대표가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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