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에서 ‘눈 깔어!’ 는 시비의 시작이다. 눈을 마주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서양에서는 예의지만, 한국에서 상대방의 눈을 계속 쳐다보는 것은 도전이나 반항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한지 2년이 넘었다. 이제는 상대방과 계속 눈을 맞추는 게 실례가 아니게 된 듯하다. 마스크를 쓴 후 처음에는 오랜 동안 알고 지내 온 사람도 금방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니 몇 번 만나지 않은 사람을 마주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눈을 뚫어져라 보면서 전에 만났던 그 사람인지 판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마스크는 시선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민망한 표정을 가려 주니 대놓고 눈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눈을 똑바로 보다 보니 눈이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았다.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들도 눈이 예쁜 사람이 많았다. 남자다운 얼굴형에 면도자국이 보이는 후배가 마스크를 쓰니 애교 있는 눈매가 드러났다. 지하철에서 마주 친 여성의 매혹적인 눈을 몇 번 다시 쳐다 본 적도 있다. 눈 화장 덕분이라고 삐딱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어떠하리. 눈이 아름다운 사람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생겼는데. 슬쩍슬쩍 쳐다본다. 그렇다고 요즘은 ‘뭘 봐!’ 하기도 어렵다. 마스크 덕에 시선이 음흉한지, 그냥 눈길을 돌리다 스친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스크 덕에 사람과 마주하는 거리가 가까워졌다. 상대방의 말이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말을 잘 전하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하고 이야기하게 될 때도 있다. 사실 잘 아는 사람과도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불편하다. 상대방의 숨결이나 체취를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때문에 소통하기 위해서 가까이 갈 수 밖에 없고, 또 마스크 덕분에 이 불편함이 다소나마 줄어든다.
듣는 사람은 더욱 신경 써서 상대방의 말을 듣게 되었다. 말소리도 작게 들리고 얼굴 표정도 보이지 않으니 상대방의 말에 집중해야 한다. 안 들린다고 화를 낼 수도 없다. 대화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말을 크게 하고 분명하게 발음하게 되었다. 말하는 사람도 조리 있게 정확한 문장으로 말하려고 애쓴다. 눈짓이나 표정으로 내 기분과 생각을 표현하기 힘들어졌으니 말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요즘처럼 말을 주고받는데 집중해본 적이 있었던가.
오랜 동안 알고 지낸 사람과도 이렇게 가까이 마주 대한 적이 있었는가 싶을 때가 있다. 상대방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때도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좋은 느낌의 향수를 쓰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가까이 들리는 음성에서 친근감이 더해지기도 한다.
출근하려고 새 마스크를 찾으면서 생각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게 되어도 사람의 말에 집중하는 습관은 남았으면 좋겠다고. 상대방의 겉모습과 인상에 현혹되거나 매혹되지 않고 그들의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좋은 면을 발견하면 좋겠다. 그들의 말을 흘려듣거나 무시하지 않겠다. 마스크를 통해 오해와 불통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한편으로 사람들의 습관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눈을 계속 바라봐도 내 눈길을 피하거나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눈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