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횡단보도를 걷고 있다. 앞에는 실내에 불이 환한 스타벅스가 보인다. 아직 영업 중인 걸 보니 밤 10시는 넘지 않은 듯하다. 횡단보도가 끝나는 왼쪽의 플라타너스 가로수에는 킥보드가 세워져 있다. 남자의 시선은 80도쯤 아래를 향해 있다. 아마도 모바일폰 화면을 보면서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걸고 있다. 가방끈이 팽팽한 걸 보니 가방이 꽤 무거워 보인다. 그렇지만 허리는 반듯하다. 그는 운동화를 신은 왼발을 앞으로 뻗고 있다.
사진의 남자는 나다. 같이 저녁식사를 한 후배가 찍은 사진이다. 후배는 이십여 년 전에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로 만났다. 코로나로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같이 하고 차만 한잔 나누었다. 짧은 만남이 아쉬웠는지 그는 길을 건너는 내 뒷모습을 담았다.
후배가 보내 준 사진을 보고 나는 사진의 남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뒷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내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뒷모습은 누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주지 않으면 볼 수 없으니까.
사람은 남의 뒷모습은 볼 수 있지만 자신의 뒷모습은 볼 수 없다. 내 뒷모습은 내가 잘 모르는 내 모습이다. 남들이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경 써서 외출복을 차려 입은 모습이 아니라 주말에 집에서 편한 옷을 걸친 내 모습니다. 앞모습이 남들과 같이 있는 모습이라면 뒷모습은 혼자 있는 모습이다.
1986년에 나는 신입사원이었다. 내가 입사한 회사에는 탁구팀이 있었다. 입사하고 본사에서 교육을 받고 있을 때 회사 탁구팀이 출전한 경기에 전 사원이 응원을 갔다. 탁구 경기는 지금은 없어진 문화체육관에서 열렸다. 경기 진행 중에 대통령이 경기를 관람하러 올 예정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십여 분 후에 대통령이 입장했다. 대통령은 우리가 앉아 있던 스탠드의 바로 아래 입구로 입장하여 반대쪽인 본부석 쪽으로 걸어갔다.
덕분에 우리는 대통령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의 뒷모습은 참으로 생경했다. 그의 앞모습은 뉴스에서 수도 없이 보았지만 뒷모습은 처음이었다. 대통령은 머리숱이 적은 분이었다. 그의 뒷머리는 단정하게 빗질이 되어 있었다. 살림살이는 별로 없어도 잘 정돈된 집안을 보는 듯 했다. 시위를 유혈진압하고 무고한 시민을 ‘교육대’로 보내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뒷모습은 욕실 거울 앞에서 조심스럽게 빗질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본사 교육을 마치고 나는 서울을 떠나 경북 구미에 있는 연구소에 근무하게 되었다. 소위 캠퍼스 커플이라 매일 볼 수 있었던 당시의 여자 친구(다행히 지금의 아내이다)와도 주말에만 만나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 2시에 ‘땡퇴근’(요즘 말로 ‘칼퇴’)하고 서울역에 내리면 아내의 환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요일 저녁에 구미로 내려올 때는 아내가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버스에 오르면서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아내는 차창 밖에서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가라고 몇 번 손짓을 하면 그제야 아내는 돌아섰다. 그때 아내의 뒷모습이 어찌나 쓸쓸해 보이던지.
내 뒷모습도 평소의 인상과 다른 모습을 떠오르게 할까? 평소에 유쾌하고 농담하기 좋아하는 내 성격대로 뒷모습도 에너지가 넘칠까?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게 견디고 있을 때는 뒷모습도 어깨가 축 처지고 기운 없어 보일까?
후배가 보내 준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사진의 모습은 그리 쓸쓸해 보이지도 않고 기운이 넘쳐 보이지도 않았다. 다행이었다. 마침 횡단보도 맞은편에 녹색불이 들어와 있는 걸 새삼 발견했다. 나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