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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Jun 06. 2022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담배에 담긴 메시지

소통이 부족한 사회...담배는 또 다른 언어로 활용된다

미뤄왔던 영화 감상을 오늘에야 끝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어떤 이들 사이에선 '100년에 한 번 나올 천재'로 평가받는 감독이다. 비교적 영화 제작 환경이 열악하다고 알려진 일본에서 훌륭한 결실을 맺었기에 더욱 돋보인다. 원작 소설의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글에서 추가로 평가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일본 문학의 거장이다.


올초부터 '해피아워'를 비롯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작품들을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입문작인 드라이브 마이 카는 좀처럼 재생 버튼에 손이 가지 않았다. 3시간의 러닝타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흘 동안 세 번에 나눠서야 (겨우) 감상할 수 있었다. 필자뿐이겠는가. 최근 몇 년 새 짧고 자극적인 내용의 콘텐츠에 익숙해진 사람이.


포털과 유튜브 등을 통해 리뷰는 포화 상태다. 굳이 한 번 더 작품성을 논하는 건 사족이다. 이런 상황에 한 두 마디 덧붙인들 어떤 의미가 있으랴. 그래서 담배에 대한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적어도 필자의 눈에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담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인간관계에서 크고 작은 문제의 원인은 결국 소통과 관련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소통은 '말'에 기대지 않는다. 모국어가 다른 다양한 국적의 이들이 모여 연극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말'로는 크게 와닿지 않을 감동을 전달하기도 하고, 주인공 가후쿠(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미사키(배우 미우라 토코)가 처음으로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슬픔을 공유하는 순간도 한 마디 말없이 함께 담배를 피우는 장면으로 표현한다.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이 장면을 제외해도 이 영화에서 담배와 관련된 은 많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아니더라도 영화에서 담배가 중요한 메시지를 지니는 경우는 전에도 있었다. 당장 기억나는 영화로는 이정재, 황정민, 최민식 주연의 한국 영화 '신세계(2013)'가 있다. 유오성, 장동건 주연의 '친구(2001)'에서도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컸다. 이쯤 되면 특정 장르에 한해 최근 몇 년 새 영화보다 드라마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원인도 흡연 장면을 담을 수 없어서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좋은 취지라서 비판할 마음은 없지만,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끄럽지만 이른 나이부터 흡연을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는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추앙)했던 영화 '비트(1997)'의 주연 배우 정우성과 유오성이 피웠던 '말보로'를 즐겨 피웠다. 20대에는 '타임'이라는 브랜드를 피웠는데 이유는 단지 순해서였다. 독하디 독한 말보로를 학창 시절 내내 피워댄 후유증이었다.


영화처럼 필자의 삶에서도 담배는 꽤 많은 '말'을 대신했다. 친구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별다른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아도 담배 한 대 건네면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한숨을 쉬듯이 함께 연기를 내뿜으면 그 순간은 긴 말이 필요 없었다. 반대로 기쁜 일이 생겨도 친구를 만나면 항상 첫마디는 "담배 한 대 피우자"였다. 그때의 담배 연기는 슬픔이 아니라 즐거움을 담고 있었다. 유일한 공통점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한 가치로는 끝나지 않고 줄담배를 피웠다는 점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 친구들을 사귈 때도 담배는 훌륭한 매개체였다. 졸업 후 대학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도 학교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면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결국 건강이 악화돼 끊었지만, 담배가 없었다면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담배는 소통이다'라고 글을 맺기는 부담스럽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다만, 필자의 삶에 한해 담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영역의 언어도 내포하고 있었다. 계속 대화를 나눠봐도 오해와 불신만 더 쌓일 정도로 심하게 다툰 친구와도 잠시 숨을 고르고 함께 담배를 한 대 피우면 뭔가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어떤 상대도 없이 혼자 화를 삭여야 하거나, 슬픔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서도 담배는 자신과 소통하는 창구였다. '안 좋은' 담배지만 이런 특성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 드라이브 마이 카를 안 보신 분들은 '담배가 지닌 메시지'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감상하셔도 좋을 것 같다. '담배' 하나로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순 없겠지만, 첫 번째 감상은 '담배를 피우는 순간'이 담는 메시지나 복선만 주시해도 꽤 재밌는 시각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와인처럼 농도가 진해지는 영화인 것 같으니, 언젠가 또 한 번 다른 시각으로 재감상해도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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