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미 Nov 02. 2022

화려한 봄꽃으로 만나

결혼기념일을 맞이해서

 “ It’s so easy to fall in love. ”

70년대 말 유행하던 팝송이다. 사랑에 빠지는 건 너무 쉽다고? 난 남편을 만나서 결혼은커녕, 사랑에 빠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외모가 못생기거나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은 부부 교사가 많지만, 그 당시만 해도 같은 교사와 결혼을 한다는 건, 여자 입장으론 굉장히 손해 보는 결혼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나도 그런 생각에 편승했다. 남편 또한 ‘쳐다보지 못할 감 찌르기라도 해 보자’하는 심정으로 내게 다가왔다고 한다.    

  

  바로 옆 교실 담임이었다. 교실 바닥이 더럽다는 둥, 뭐가 어떻다는 둥, 사사건건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그다음 해에는 우리 반은 2층, 그 남자 반은 4층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야간대학원을 다니느라 늘 바빴다. 결혼보다는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호텔에서 일하고 싶었다. 교실 앞쪽에 유리창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그 유리창을 통해, 나를 쳐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겸연쩍게 웃으며

  “뭐 도와드릴 일 없어요?”

  하고 딴청을 부렸다.

  손재주가 없는 나를 도와서 교실 환경미화라던지, 대학원 과제 표지를 만들어주었다. 사사로운 일을 오빠처럼 의논하며 친해졌다. 학급경영에 필요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내가 주말에 일직하면,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학교에 놀러 왔다. ‘쿵 짝 쿵쿵 짝’ 우습기 짝이 없는 이상한 리듬의 풍금에 맞추어 함께 노래를 불렀다. 가끔 소개팅이 들어오면 소개팅한 남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어떤 날은 소개팅이 끝날 때까지 늦도록 기다려주기도 했다. 만남이 계속되면서 이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상함이 내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론 이런 내 마음이 불안했다. 가난한 교사이기에 배우자로서는 영 아니었다. 부모님의 반대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 만해도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다섯 자매 중 첫째인 나를 제치고 둘째와 셋째가 먼저 결혼한 상태였다.      


  2월 밸런타인데이에 웬 키 큰 여자아이가 스테이플러로 감싼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풀어보니 초콜릿 상자였다. 앞줄에 앉은 남자아이가

  “어? 이 누나 6학년인데? 그 담임선생님이 선생님 좋아하나 봐요?”

  앞니가 빠지고 귀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남 00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훗날 물어보니 학급에서 가장 입이 무거운 학생에게 심부름을 시켰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어렵고 힘든 과정 끝에 드디어 결혼 날짜를 잡았다. 신혼여행을 가려고 옛날 서대문 KAL 빌딩을 가게 되었다. 그땐 인터넷이 없어서 항공사에서 직접 비행기를 예약해야 했다.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서울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가 없다고 했다. 갑자기 남편이 배를 타고 제주로 가겠다고 했다.

  “아니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배를 타고 가요? 난 절대 배 타지 않을 겁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뽀로통해서 그 빌딩을 나왔다. 한참을 걸어 뒤를 돌아보니, 따라올 줄 알았던 사람이 뵈질 않았다. 알고 보니, 자신도 화가 나서 집으로 가버린 거다. 아! 그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가 있었는데 알아채질 못했다. 남편은 섬이 고향이라서, 나름 배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나는 반대로 멀미가 심한 편이라 오랫동안 배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조금씩 이해한다면 풀릴 일이다. 얼마 전까지도 화가 나면 대화로 풀지 않고, 먼저 집부터 나가는 버릇이 있었다. 남들은 남편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는데, 평생 절대 먼저 사과하는 일이 없었다. 요즘은 화를 낼 일도 없고, 오랜 세월을 함께 하다 보니 서로 묻지 않아도 얼굴만 보면 무엇을 원하는지 금세 알아차린다.


  87년 10월의 마지막 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강남의 가장 유명한 예식장에서 했는데, 20분마다 한 쌍이 결혼했다. 예식장은 신혼부부를 찍어대는 공장과 같았다. 늦게 도착한 하객은 다른 쌍의 결혼식이 빠르게 진행되어서, 본인이 축하할 신랑 신부인지 긴가민가했다. 신혼여행으로 부산을 거쳐 이틀을 자고, 김해공항에서 제주로 가기로 했다. 결혼식장에서 서울역까지 이동하는데, 시동생의 차를 이용했다. 서울역까지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차가 고장이나, 멈춰 버렸다. 기차 시간이 임박했다. 정신없이 뛰어 기차를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숨을 고르며, 자주색 포니 똥차를 원망했다.   

   

  부산에서는 그래도 번듯한 호텔에 숙박했지만, 제주에서는 삼류 호텔에서 숙박해야 했다. 지금처럼 예약 체계가 잘 되어있지 않은 이유도 있고 정보도 경비도 부족했다. 호텔 방에는 바퀴벌레도 보였다. 남편은 매번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축의금 받은 봉투의 돈을 꺼내 세기 시작했다. 내가 보지 못하도록 반대편으로 등을 향하면서 돈을 세는 모습이 매우 우스꽝스러웠다. 내가 그 돈으로 무얼 하려고 그렇게 돈을 세는지 물었다.

  “우리 결혼식 장면 찍은 비디오를 장만하려고.”

  돌아와서 중고 비디오를 샀는데, 일 년도 쓰지 못하고 버렸다. 새 비디오 모델이 나와서 월부로 새로 장만했다.     


  결혼 기념으로 일주일 후에 제주를 가기로 했다. 해마다 제주를 봄, 가을로 한두 번 정도 다녀온다. 제주 다녀올 적마다 투덜거리며, 바퀴벌레가 나오는 호텔에서 잤던 기억을 남편에게 소환시켰다. 이번에는 35년 전 한복을 입고 돌았던 한라산도 다시 가볼 것이다. 중간에 소변이 급해서 남편은 망을 보고, 나는 한복 치마로 가리며 볼일을 봤었다. 그 장소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교실 유리창에서 몰래 나를 쳐다보던 남자, 묵던 호텔 방에서 들어오자마자 돈부터 세던 남자, 잘생긴 젊은 남자는 이제 내 곁에 없다. 검버섯이 얼굴과 손목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건장한 체구도 점점 왜소해져 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날씬했던 몸매와 갸름했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얼굴도 몸매도 점점 펑퍼짐해져 간다.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글도 잘 읽지 못한다. 대신 가는 곳곳마다 돈을 셀 필요가 없고 싸구려 호텔에 묵지 않아도 될 경제적 여유가 있다. 고장이 난 오래된 차를 탈 일은 없고 튼튼한 새 차로 제주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화려한 봄꽃으로 왔다가 이젠 석양을 함께 바라본다. 35년 살다 보니 꿈에서 만난 왕자님은 아니었지만, 장독대의 묵은 된장 마냥, 없으면 안 될 서로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미안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