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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미 Nov 03. 2022

지금 알게 된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엄마, 아빠한테 뭐가 날아왔어.”

  직장동료와 퇴근 후 볼링장에서 볼링을 하고 있는데, 딸의 전화다.

  “뭐라 씌어 있는지 읽어봐.”

  “속도위반했다고 과태료를 내야 한다네.”

  ‘엉? 이 양반 왜 저래?’

  내색하지 않고 게임을 계속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이번에도 똑같은 게 왔어. 근데 날짜가 다르네?”

  나는 볼링공을 냅다 집어던졌다.

  “속상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겠네요. 미안합니다. ”   

  

  남편은 이상한 객기가 있었다. 고속도로에 가면 뭐가 그리 급한지 운전을 급하게 하고, 요리조리 차선을 바꾸며 빨리 가지 못해 안달했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는 교사 특유의 세심함이나 나쁘게 말하면 쪼잔함이 없어서 끌렸었다. 그런데 속도위반 과태료뿐만 아니라, 대형 사고를 계속 치고 다니는 남편을 어떻게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일 년간 면허 정지로 차를 끌고 다니지 못한 일도 있었다. 동료와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는데, 그 골목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큰 골목까지만 운전해서 나온다는 게 음주운전에 딱 걸렸다. 음주운전 측정을 거부해서 일이 더 커졌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 면허 정지 백일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잔머리를 써서 소송을 거니, 일 년 면허 정지에 벌금도 280만 원이었다. 벌금도 벌금이지만, 자동차 없이 일 년을 지낸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렇게 술 마신 것을, 후회했지만 술을 끊지는 못했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에게 휴대전화로 연락했지만 받질 않았다. 술만 마시면 연락 두절이라서 걱정이 많았다. 그 당시 비싼 모토로라를 장만해주어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토록 했다. 새벽 세 시까지 아파트 앞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다섯 시간을 기다리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택시에서 내리는 남편에게 울면서 아버님 소식을 전해야 했다.

  “왜, 전화를 받지 않은 거야?”
   격앙되어 물었다.

  “전화 받아도 중간에 오지 않을 텐데, 뭐하러 전화를 받나?”   

  

  얼마나 술을 마시면 인사불성인지, 다음 날 제정신이 들면 지갑부터 찾았다. 지갑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술값을 어떻게 지불했는지도 확인했으리라. 어떻게 집은 제대로 찾아오는지 참 신기했다. 친정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시지 못했다. 약주 몇 잔 하시고 집에 오면 주무시느라 술에 대해 걱정해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남편이 처음 술을 마시고 들어 온 날,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와 다른 말투, 술 냄새,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술만 마시면 그날 하기로 한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남편은 어느 날, 새벽 두 시경 친구 둘을 데리고 우리 집에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다. 호기를 부리며 양주를 꺼내어 친구들과 술판을 벌였다. 조금 지나니 각자의 집으로 가는 눈치다. 다음 날 학교에 출근하여 생각해보니 괘씸하기 짝이 없어 부르르 떨렸다. 불같은 화가 꺼질 줄 몰랐다.

  ‘출근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이래서는 안 되지.’

  조퇴하고, 구청에 갔다. 이혼신청서를 담당 직원에게 달라고 했다.

  “웬만하면 같이 사시지요.”

  뒤통수가 따가움을 느끼며 구청 문을 나섰다.

  이혼신청서를 식탁 위에 며칠 동안 보란 듯이 올려놓았었다.      


  2000년 캐나다로 한 달간 출장을 갔었다. 초등 5학년생인 딸에게 중간에 걱정이 되어 전화했다.

  “잘 지내니?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야?”

  “걱정하지 마, 엄마.”

  “아빠가 밥 잘 챙겨주니?”

  “아빠가 매일 술 먹고 들어와서 돈을 막 나한테 뿌려줘. 그걸로 빵도 사서 먹고 용돈이 많아 아주 좋아.”

  남편학교와 우리 학교는 이웃 학교였다. 이웃 학교끼리 배구 시합을 하다 보니 나의 출장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는 우리 학교 선생님과 아내 없으니 한잔하고 들어가라 하고, 하루는 남편학교 선생님과 아내 없는 집에 일찍 가면 뭐하냐 하면서 한잔하다 보니 매일 술 파티를 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업무로 시달린 어느 날이었다. 늦게까지 남편을 기다리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살펴보니, 남편이 보이지를 않았다. 딸에게

  “큰일 났어. 아빠가 어젯밤 들어오지 않았어.”

  “정말? 그런데 저기 꿈틀거리는 사람은 뭐야?”

  거실 소파 앞에서 이불도 덮지 않고 남편이 꿈틀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남편은 술자리에서 객기를 부렸다. 술을 많이 마셔야만 ‘남자다움’이 과시되고, 술이 세야만 남자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의식구조를 가졌었다. 술을 마시지 못하면 남자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술자리에서 오래 있어야 하고, 술이 오고 가야 조직의 갈등이 해결된다고 믿었었다. 술자리를 일찍 뜨는 사람은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이었고, 적응하지 못하는 ‘왕따’ 취급을 했다. 친구와의 의리도 술자리에서 생긴다고 믿었다. 모든 즐거움은 술자리에서 생기는 것이고, 조직의 축소판이라 생각했다. 가정은 뒷전이었다. 심지어 내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도 삐죽 얼굴만 내밀고 모임에 갔다.      


  그러던 남편이 딱 술을 끊게 되었다. 건강검진에서 췌장에 조그만 혹이 발견된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신 게 원인입니다. 술을 더 마시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겁을 주었다. 지금도 매년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지만 이젠 혹이 더 커지진 않는다.


  “그때,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나 몰라. 자네한테 제일 미안하네.”

  “그때 마신 술값을 몽땅 당신에게 주었으면 우린 큰 부자가 되었을 텐데.”     


  ‘지금 알게 된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무슨 영화의 제목 같다. 그 세월로 나는 흰머리가 늘고 얼굴에 마음에 주름을 새겼다. 입덧으로 열 달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에도, 밤늦게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귀가를 걱정해야 했다. 딸 아이가 아플 때도 혼자 동동거리며 속을 끓여야 했다. 내일 수업 공개로 일찍 잠을 자야 했다. 잠을 청해야 하는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원망하다가 걱정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전화기를 부수어버리고 싶은 날도 많았다. 아마 마음먹은 만큼 부셨다면 한 광주리는 나올 것이다.   

   

  우리는 매일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저지른다. 담배가 몸에 좋지 않으면서도 피우고, 탄산음료가 해로운 줄 알면서도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쾌락에 탐닉한다. 쓸데없는 객기와 술을 과하게 마시는 남편이 달라졌기에 우리 가정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부부가 같이 산책하거나, 골프도 함께 한다. 제주로 가족여행을 자주 다니게 되었다.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음악을 함께 듣고 차를 마신다. 요리 학원에 등록해서 6개월 다니더니, 맛있는 음식으로 나를 즐겁게 한다.    

 

  가끔, 아주 가끔 술에 취해 달밤에 아파트 떠내려갈 만큼 소리 지르던 남편의 음성이 생각난다.

  “사랑해! 박찬미!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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