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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미 Nov 04. 2022

타국에서 생긴 일

  “어? 카메라 어쨌어요?”

  “아차! 로비 테이블에 놓고 왔네.”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남자들이 여권과 돈 가방 등을 챙기느라 크로스백을 걸치고 다닌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다르다. 여행 중에 모든 중요한 여권이며 현지 화폐, 카드 등을 모두 내가 챙긴다. 늘 무엇을 미리 챙기지 못하고는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거나, 공항에 도착하면

  “아차! 00을 놓고 왔다.”

  남편과 여행 가면 설레기보다는 무엇을 놓고 가지는 않는지 점검하느라 잠을 설친다.


  예전에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았을 때, 괌 여행에서 남편은 달랑 카메라만 들고 다녔다. 조식을 먹고,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를 기다렸다. 투어 갈 버스가 오자, 테이블에 카메라를 놓고는 그냥 버스를 타버렸다. 챙긴 줄 알고 버스에서 카메라가 어디 있냐고 묻자 그냥 테이블에 놓고 왔단다. 투어 후 다시 그 자리에 가보니 당연히 없다. 결국 카메라를 찾지 못하고 일회용 카메라를 샀다. 그 전날 찍었던 괌 투몬비치 해변에서 어부를 만난 아침 풍경을 다시 찍었다. 다행하게도 그 어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 일회용 카메라마저 잃어버렸다. 할 수 없이 또 일회용 카메라를 다시 사서, 세 번을 똑같은 장소에서 모델처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는 어부를 만나지 못했다.     

 

  팔라우에서 해파리 관광을 갔다. 젤리피쉬 레이크 투어는 세계에서 유일한 독이 없는 100만 마리 해파리가 사는 호수를 가는 관광이다. 해파리를 직접 만져 보고 해파리와 함께 수영해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출발점에서 10리 길을 스노클링을 해야 한다. 남편을 찾아보니 벌써 혼자 수영해서 저만치 앞서고 있다.

  ‘누가 섬에서 태어난 사람 아니랄까 봐. 관중을 의식했나? 스타도 아니면서.’


  스노클링으로 혼자 드넓은 호수를 가는데, 처음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곧 지치고 말았다. 다른 팀들을 보니, 널따란 보드를 잡고 가족끼리 스노클링을 하는 게 보였다. 할 수 없이 염치불구하고, 누군가의 팀에 끼어 그 보드를 잡고 수영했다. 그 팀은 장모와 사위 둘, 딸 둘로 이루어진 팀이다. 큰 사위가 수영하는 옆에 꼽사리로 끼어들었다. 덩치가 큰 남자가 보드로 그 팀을 이끌고 가느라 발을 차면서 수영을 하니, 내 넓적다리가 멍들 지경으로 아팠다. 바다 같은 호수에 해파리가 정말 많았다.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었다. 물방울 같기도 하고 풍선 같기도 한 게 무척 신기했다. 게다가 독이 없다니 슬쩍 만지며 감촉을 느끼기도 했다. 수중 카메라로 해파리 촬영을 가까스로 하고 배로 다시 돌아가는데, 물갈퀴가 접혔다. 배에 내리면서 그만 꽈당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나를 망망한 호수에 버려두고 혼자 잘난 척 다녀온 남자가 웃으면서 내게 다가와 말한다.

  “와! 이게 무슨 일이야? 난 팔라우에서 지진이 난 줄 알았네. 자네가 다친 줄 몰랐지.”

  “아파 죽겠는데.”

  그 무릎 부상으로 몇 년간 병원 다니며 고생했다.   


  세부에서 스킨스쿠버 강습 후 선택 관광으로 스킨스쿠버 일 인당 90$짜리 체험을 하였다. 패키지라 일행 중 여섯 분의 여자팀은 마냥 무섭다며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해서 우리 부부만 바다에 들어갔다. 바닷속은 수많은 울긋불긋한 니모가 헤엄쳐 다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사진에도 집중해야 하고, 바다 밑 기압과 equalizing 생각, 등으로 배운 것을 상기하다가 갑자기 호흡을 멈추게 되었다. 숨을 못 쉬고 있었다.

  ‘아, 난 바다에서 죽는구나.’

  옆에 남편을 보고 살려달라는 구조 신호를 보냈는데,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다행히 회사 사장이 눈치를 채고 물 위로 끄집어내어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왜 나를 쳐다보고 위험 상황을 지켜보지 않냐고 타박을 하니,

  “스킨스쿠버가 너무 재미있었어. 한눈팔 틈도 없이.”

  내 평생 죽음에 대한 위협을 느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태국 방콕의 야시장은 볼거리가 정말 많았다. 열대과일, 각종 수산물, 먹거리, 액세서리 등 사람들로 북적댔다. 시장 한복판에서 킥복싱을 하고 있었다. 얻어터지고 맞는 게 무슨 재미가 있다고 구경하는지,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하지만 남편은 신이 났다. 경기가 끝나자 나에게 천 원짜리나 달러를 달라고 했다. 곧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다. 이 순간만 참고 가면 돈이 굳을 판이다.

  “뭐하러, 이천 원씩이나 줘요?. 곧 비행기 탈 건데.”

  남편은 돈을 주지 않는다며 나를 노려본다.

  “남자가 체면이 있지. 경기를 구경했는데.”

  “그놈의 체면! 지겹다. 지겨워”          


  중국 북경 여행할 때였다. 00 과학원이라는 곳에 들러 진맥을 받았는데 스무 명이나 되는 패키지 인원 중 하필 남편과 나만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거다. 귀가 얇은 남편은 이백만 원이나 되는 생약을 샀다. 패키지 경비는 오십만 원이었는데, 네 배가 되는 돈을 쓴 것이다. 패키지 때마다 눈치를 주고, 발로 밟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렇게 산 뉴질랜드 양모 이불은 가격이야 어쨌든 유용하게 아직도 쓰고 있다. 그렇지만 그때 사놓고 어디에 두었는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고 던져둔 게 대부분이다.   


  평소에 생활할 때는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니 부부가 부딪힐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해외여행의 경우에는 24시간 함께 붙어 있으니, 이래저래 간섭하게 된다. 가이드 말로 어떤 부부는 여행 첫날 싸워서 마지막 날까지, 버스에서 남편은 맨 앞자리에, 아내는 맨 뒷자리에 앉아 서로 말도 섞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여권을 찢고 싸운다고도 한다.  


  성격이 느긋한 남편은 여행 짐 꾸리는 것도 출발 시간 임박해야 챙긴다. 아침에 가이드 만나는 시간도 절대로 미리 나가 기다리지 않는다. 성격이 급한 나는 조급증 때문에, 입에 침이 마를 지경이 되어야  남편은 엉덩이를 떼며 일어난다. 제일 열받는 부분은 기껏 패키지 검색해서 예약하고, 짐까지 다 꾸린 후, 여행 내내 귀중품 들고 다닌 내게 마지막 귀국 공항에서 하는 말이다.


  “이번 여행은 붐비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어. 이젠 다시는 다니지 말자.”

  “이번 여행은 장시간 비행기 타느라 힘들었어. 이젠 장거리는 피하자.”     


  여행 다녀온 후, 나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그때 왜 그랬는지 남편에게 따져 묻는다. 그럼 남편은 잘못 저지르고 자기 집으로 눈치 보며 도망가는 강아지처럼 꽁무니를 내뺀다. 그래서 부부다.     


늘 "아차"를 연발하는 남편이지만, 나는 오늘도 남편과 함께 하는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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