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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미 Nov 09. 2022

내 장조림은 어디 갔어?


  “ 내가 만든 장조림이 안 보이네. 혹시 장조림 보지 못했어요?”

  “ 아! 그거 내가 미역국으로 다시 만들었는데?”

  “ 아니, 장조림에 설탕을 넣었는데, 그걸 미역국으로 만들면 어떻게 해요? 참 나 원”


  남편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설거지하는 것은 지독히 싫어한다. 미역국이나 생선조림, 오징어 등 주로 바닷가에서 나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 섬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가끔 몸살 기운이 있거나, 꼼짝하기 싫어 누워있을 때, 주방에서 나는 고소한 매운탕 냄새를 맡는 일은 내게 행복감을 충만하게 해 준다. 그런데 내가 만든 음식이 다른 요리로 탄생하다니? 기껏 만든 작품이 남의 작품이 되어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조금 억울하다. 나도 손맛 좋다고 소문이 났고, 나름 요리에는 자신이 있다.  

   

  딸이 오랜만에 온다기에 카레를 만들었다. 소고기와 감자, 양파, 당근, 콩 등을 넣어 정성껏 만들었다. 잠시 외출해 돌아와서 보니, 맛이 달라졌다. 남편에게 따지듯 물어보았다.

  “아! 그거 내가 북어를 잘라서 넣었어.”

  “소고기가 들어갔는데, 웬 북어?”

  딸이 비릿한 냄새가 난다고 먹지를 않는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소고기 미역국에 내가 한눈파는 사이에 가미한 조갯살을 넣어서 비릿한 냄새가 난다. 바닷가 사람이라선지 왜 그렇게 비린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또 타박했다.

  “맛만 좋구먼.”

     

  퇴직 전에는 친구들 만나 술 마시기 바빠서 차려준 밥도 간신히 먹고 다녔던 남편이다. 췌장에 뭐가 생긴 게 술 때문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술을 끊었다. 자연스레 술친구와도 멀어졌다. 게다가 퇴직하니, 남는 게 시간이다. 집에서 내가 해주는 음식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고쳐서 먹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매일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두릅과 미나리를 밭에서 따서 살짝 데친 후, 전을 부쳤다. 전 부치는 것을 보던 남편이, 자신이 하겠다며 밀가루 반죽해 놓은 것을 가져갔다. 남편이 거의 타기 일보 직전으로 전을 부치기에 다시 빼앗았다. 생선을 굽거나, 고기를 익힐 때도 퍽퍽하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익힌다. 항상 전 부칠 때마다, 참견해서 서로 다투곤 한다. 전 부치는 날은 싸움하는 날이 되어 버렸다. 막냇동생은 만날 때마다 놀린다.

  “언니!, 전은 부치지 마!”
 

  딸이 중학생 시절, 결혼기념일이라고 스테이크 집에 갔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외식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남편 입에 살짝 덜 익힌, 먹음직한 스테이크 한 점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같이 화를 버럭 내는 거였다. 영문을 몰랐지만 너무나 기분이 상해서 먼저 레스토랑을 나와 버렸다. 훗날 남편은 덜 익힌 고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그 후로 남편 입에 절대로 무엇을 넣어주는 일은 없다. 본인도 자신의 음식은 자신이 알아서 먹는다는 주의이다.      


  친정아버지가 충청북도 출신이라 내륙에만 살아선지, 어려서부터 비린 것은 별로 먹지 않고 자랐다. 기껏 생선이라고는 고등어자반이나 조기 정도를 먹었다. 생선 좋아하는 남편과 살다 보니 나도 생선을 잘 먹게 되었다. 이제는 없어서 못 먹는다. 가끔 남편은 내가 생선 뼈를 귀신같이, 기가 막히게 잘 발라 먹는다고 놀린다.


  신혼 초에는 김치찌개를 두 종류로 끓였다. 신 김치로 하는 찌개는 내 것이고, 익지 않은 김치로 만든 찌개는 남편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제는 중간 정도로 하나만 끓이게 되었다. 부부란 음식 취향도 스펀지에 물 적시듯 서서히 스며드나 보다. 가끔 남편이 자신의 취향대로 무언가를 만드는데,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주방에서 음식 만들어 먹기 귀찮은 날에는 남편이 해주는 요리가 오히려 고맙다. 남편은 퇴직 후 6개월 동안 한식, 중식, 일식 등을 요리 학원에서 배웠었다. 교장 출신이 예상외로 요리를 잘한다고 학원 원장에게 칭찬도 들었다고 떠벌린다.      


  그래도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고 늘 치켜세우는 남편이 밉지는 않다.

  “자네가 만든 전이 최고야.”

  “자네가 만든 갈비찜이 최고야.”

  “우리 갈비 식당 차릴까?”


  처음엔 거칠고 고유의 특색으로 만난 재료가 어우러져서 맛있게 곰삭은 젓갈이 되듯, 그렇게 부부의 음식 취향도 서로 발효를 거치며 숙성된다. 오늘은 무슨 맛난 요리를 해줄 거야, 여보? 그래도 제발 내 작품은 건들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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