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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미 Nov 20. 2022

다시 쓰는 편지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
 그래서 서로 싫어했던 사람
 이 세상 누구보다 강한 사람
 제일 친한 친구 같은 사람
 이제는 내 키가 더 커져서 내려다보는 사람
 내가 많이 힘들게 한 사람
 나 때문에 혼자 몰래 울었던 사람
 듣기 싫은 잔소리가 많은 사람
 하루도 빠짐없이 나랑 싸우는 사람
 꼭 이겨 먹어야 했던 사람
 너무너무 미안한 사람
 얼굴만 떠올려도 눈물부터 나오게 하는 사람
 날 위해 좋은 조건들 모두 포기한 사람
 세상 모두 다 아니라 해도 영원히 내 편인 사람
 늘 옆에 있어서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
 죽을 때까지 못 갚을 사랑을 준 사람
 언젠가는 나를 떠나야만 하는 사람
 하루라도 없이는 못 살 것만 같은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엄마

     

  딸이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에 건강이 좋지 않아 암 검사를 받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무척이나 길게 느꼈던 일주일. 딸에게 이런 편지를 받고 많이 울었다. 구절구절, 한 문장마다 가슴에 와닿았다. 딸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다행하게도 암이 아니었다. 치열하게 일에 파묻혀 살다가 문득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경각심이 일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또 한 번 위기가 있었다. 새벽부터 배가 아픈 건지, 옆구리가 아픈 건지 통증이 계속 왔다. 일어나려는데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때 정신을 잃으면 죽을 수 있겠다 싶었다. 딸이 사 온 장염 약을 먹어도 소용없었다. 남편은 아픈 나를 두고 출근해버렸다. 딸이 119로 전화해서 응급차를 타고 함께 병원에 가니 요로결석이라고 했다. 물 한 잔 마실 틈 없이 일한 탓이다. 딸이 곁에 없었더라면 어쩔뻔했나?   

   

  교무부장으로 일할 때였다. 교장이 참 못되고 힘들게 굴었다. 울면서 운전하고 오는 퇴근길이었다. 어쩌다가 딸에게 이런 모습을 들켰다.

  “엄마!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잖아. ”

  “엄마! 조금만 참아. 힘들겠지만.”

  딸의 위로가 참 고마웠다. 초빙교사로 갔던 일이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그때 이미 교감 연수 차출이 결정되었던 시기인데, 정기전보로 다른 학교로 가야 했다. 그래도 초빙으로 가면 뭔가 안정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초빙하겠다고 부른 학교에 이미 교감 승진 대상자가 있었던 거다. 교감 승진 대상자가 있으면 교감 승진에 근무 평정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게다가 교장은 말할 수 없는 부패 온상의 최고봉이었다.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속상한 일로 남편에게 전화했다.

  “나 너무 힘들어. 오늘은 00해서 00 하는 일이 있었어.”

  “그러게 왜, 내 말을 듣지 않고 초빙으로 가서 그래. 끊어!”

  남편은 초빙으로 가지 않아도 교감 승진에 차질이 없으니 정기전보로 가길 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음 아파 전화한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그때 남편은 차가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미웠다. 맘이 아플 때 위로해주는 딸과 비교가 되었다.   

   

  딸이 유치원 다닐 때, 간식 도시락을 싸며 메모처럼 쓴 편지를 도시락에 끼워 보냈다. 주로 ‘사랑한다’ 라거나, ‘오늘도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쓸 때마다 행복했다. 딸이 유치원 다닐 때 한글을 미리 익혔다. 오늘 읽은 엄마의 편지에 대해서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반짝이는 까만 눈은 진주 같았고, 종알대는 입을 열 때면 종달새 같았다.   

  

  예쁘기만 한 딸은 아니었다. 중2 때부터 늦어지는 귀가에 자주 나와 다투었다. 월드컵 경기 때는 태극기를 몸에 휘두르고 자기가 태극전사인 양 응원한답시고 늦었다. 중, 고등학교 졸업 때는 졸업식에 온 나와 사진 한 장 딱 찍고는 친구들과 돌아다녔다. 무슨 핑계만 있으면 귀가가 늦어지는 딸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대학교 때는 내 카드를 주어서 그나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친구를 좋아하고, 무언가를 나서서 해야 하는 딸은 나와 생각과 행동반경이 다르다. 그런 딸을 아무 이유도 없이 무턱대고 응원하는 남편이 미웠다. 하루는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들어와서는 영어 숙제를 해야 하는데,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단다. 그 무렵 학교 일로 지쳐서 파김치가 되어

  ‘이제 좀 쉬어야지.’

  생각하던 차다. 짜증이 팍 일어서 뭐라 신경질을 내려는 순간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줘요.”

  남편의 얄미운 말 한마디로 어쩔 수 없이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딸도 남편처럼 무슨 일이 닥치면 하는 스타일이다. 미리미리 무엇을 준비하는 법이 없다.


  승무원 생활로 출퇴근이 불편해서 딸이 오피스텔에서 따로 살게 되었다. 그래도 비행이 없을 때는 가끔 집에 와서 있다가도 별것 아닌 문제로 나와 갈등을 빚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집에서 예민하게 굴었다. 둘이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는 생각이 나진 않지만, 서운한 감정이 오래갔다. 딸과 다투면 남편과 다툰 것보다 더 서러웠다. 싸우다가 딸이 비행 가거나, 오피스텔로 가버리면 냉전 기간이 더 길어진다. 그럴 땐 밤마다 베개가 젖을 정도로 눈물이 났다. 마음에도 없는 문자를 보낼 때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둘 중 하나가 미안하다고 하면, 둘 다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마음이 금세 녹아내렸다.

  “엄마! 미안해! 이번에 LA 갈 건데, 뭐 필요한 것은 없어?”

  라고 문자를 보내면, 난 립밤이나 핸드크림 같은 아주  자잘것들을 사 오라고 한다. 그래도 딸은 엄마의 화장품 목록을 꿰고 있으니 알아서 늘 잘 준비해 준다.    

 

  딸은 나와 아픈 것도 비슷하다. 내가 감기로 아프다 싶으면 희한하게 딸도 감기에 걸려있다. 텔레파시도 통하는지 내가 전화하려 하면 딸에게 전화가 온다. 도플갱어처럼 성격도 비슷하다고 사위는

  “장인어른 참 대단하셔. 너와 장모님 비위를 다 맞추며 사시니.”

  라고 딸에게 얘기한단다.    

  

  제사 때 전 부치는 일 도와준 것 외에는 집안일을 시킨 적이 없어선지 딸은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결혼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뭐 하나 변변하게 반찬을 만들지 못한다. 얼마 전 진미채 볶음, 멸치볶음, 새우볶음 등 칼칼한 것을 좋아하는, 사위를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 보냈다. 사위가 아주 좋아한단다. 이젠 밑반찬을 만들며 도시락 편지를 써 보낼 참이다. 잔소리를 써서 보낼 수도 있고, 반찬 만드는 조리법일 수도 있다. 예전에 유치원 다닐 때 도시락 편지를 읽듯이 딸이 좋아할까? 한창 신혼이니 사위가 보내는 편지만은 못하겠지만, 난 그 옛날 설레는 마음으로 썼었던 나와  어린 딸의 모습을 회상하며 편지를 쓸 것이다.


  “딸, 남편에게 너무 잔소리하지 마라. 술 먹었다고, 늦게 왔다고 뭐라 하지 마.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더했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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