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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미 Nov 08. 2022

누구세요?

  “누구세요?”

  “어머나? 너 어떻게 된 일이야?”

  ”아빠가 가발 사고 싶다고 했더니, 사줬어. 가발 가게 가서 두 개 샀어. 오늘은 하얀 머리를 했지. “

  남편과 만나기로 했는데, 어떤 하얗고 긴 파마머리를 한 여자와 남편이 식당에 들어선다. 처음에는 서양 여자가 들어오나 했다. 낯익은 얼굴 같아서 자세히 보니 내 딸이다. 중학교 2학년! 중2가 무서워 북한 공산당도 쳐들어오지 못한다더니, 세상에! 바로 내 딸이 가발을 쓰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한참 동안 충격에서 벗어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얼마 전부터 딸이 가발을 사고 싶다고 했다고, 남편과 함께 남대문 시장에 가서 가발을 골라 뒤집어쓰고 나왔다.

     

  남편은 나 몰래 딸에게 운동화를 사주고, 화장품도 사주었다. 비싼 걸 사줘야 피부에 해가 없다고 화장품도 직접 데려가 사주었다. 얼마 주고 샀는지도 내게 이야길 하지 않는다. 무슨 데려온 딸도 아닌데, 왜 그렇게 둘이 비밀이 많은지 모르겠다. 남편은 내가 모범생으로만 자라서 고지식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나치게 딸의 편을 드는 남편이 못마땅했다. 남편은 딸아이가 호기심이 많은 것을 알았다. 혼자서 호기심을 채우기보다는 부모가 앞장서서 뭐든 함께 하면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거란 깊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딸을 데리고 뉴질랜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시무룩하기에 왜 그런지 물었다.

  ”신화 콘서트 가려고 했는데, 이 시기랑 겹쳐서 가지 못하게 되었어요,“

  첫 해외여행보다는 신화 콘서트가 딸에겐 우선순위였다. 6학년 때는 무슨 콘서트 가는데 딸을 새벽에 잠실 종합운동장에 데려다주느라, 남편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어서 콘서트 가지 않냐고 묻자,

  ”이제 그런 곳에 쫓아다니지 않아요. “

  이젠 또 다른 것에 눈을 돌린 것이다     


  딸은 뭐든 빨랐다. 어려서 말도 빠르고 뒤집기도 빠르더니, 걷는 것도 빨라 돌 무렵에는 잘도 걸어 다녔다. 나와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은 선생님을, 백화점에서 우연히 만났다. 딸과 걸어 다니는 나를 보더니

  ”저 아이는 누구인가요? “

  ”제 딸이지요. “

  그분의 아들은 걷지 못한다며 다른 아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한글도 빨리 깨쳤다. 유치원 간식 도시락에 매일 도시락 편지를 써서 함께 넣어주면, 곧잘 읽곤 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어린이집이 많지 않아서, 유치원 때까지는 이웃에게 맡겼다가 퇴근 후 딸을 데려왔다. 초등학교는 3학년까지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다. 순전히 돌봄 차원에서다. 딸은 수업이 끝나면 피아노 학원과 발레 학원을 다녀와 우리 교실로 왔다. 보통은 나와 같이 차를 타고 퇴근을 하였다. 회의가 있거나, 출장 때는 혼자 있어야 할 딸을 어디 맡겨야 할지 늘 걱정이 많았다. 출퇴근을 자동차로 하면서, 언젠가는 차 열쇠를 잃어버려 둘이 피아노 가방이며 학원 가방을 잔뜩 들고서, 전철을 타고 집에 가기도 했다. 4학년부터는 집 근처 학교를 보냈다. 4학년 어느 날 딸이 푸념했다.

  ”엄마가 3학년 때까지 나를 같은 학교에 데리고 다니는 바람에 내가 자립심이 부족했어. “

  힘들게 고생하며, 딸을 데리고 다녔었는데, 딸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딸은 중학교 들어가면서 키가 전봇대처럼 부쩍 컸다. 1학년 때까지는 시험을 볼 때마다 나와 같이 공부했다. 차라리 내가 시험을 본다면, 백 점을 맞았을 것이다. 암기과목에서 내가 질문해서 대답을 잘하면 000 과자를 하나씩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2학년이 되자 더욱 키가 커지고 힘이 세졌다. 그럴수록 점점 더 엄마 말을 듣지 않았다. 나보다 힘이 세고, 키가 커지자 물리적인 힘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어쩌다 회초리를 들면, 간단하게 완력으로 나를 제압했다.


  고등학교 때 딸은 서실에서 새벽 두 시까지 공부하고 귀가했었다. 남편이 새벽 한 시 반이면 나가서 서실 앞에서 기다려 딸을 데려왔다. 가끔 남편이 서실 친구들 모두를 불러 떡볶이 파티를 열어 주었다. 친구들은 남편을 ‘0 사마’라고 부르며

  “너희 아빠 언제 또 안 오시니? ”

  하며 열렬히 위문을 자주 와주길 원했다.


  딸이 재수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과연 재수하면서 공부를 제대로 할까? 늘 앞서가는 아이인데, 혹시 못된 것을 먼저 배우지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고 스쳐 지나갔다. 미대를 갈 예정이라 미술학원 근처 고시원에서 지내야 한다고 했다. 고시원에 이불 둥치를 놓고 온 날, 많이 울었다. 달랑 이불 둥치 외엔 마땅히 무엇을 둘 곳도 없이 좁은 방이었다. 그 좁아터진 방에서 친구와 둘이 공부와 미술 두 가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는 것도 형편없을 것이다. 여자아이 둘이 집 밖에서 지낸다는 생각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러나 딸은 누구를 닮았는지 의지가 강했다. 공부하느라 앉아서 잤다고 한다. 결국 원하던 sky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딸은 대학 생활을 신나게 즐겼다. 재학 중에 갑작스레 인터넷 쇼핑몰을 하겠다고 했다. 견학을 위해 동경에 다녀오고, 인턴으로 뉴욕에서 일하기도 했다. 사업계획서를 메일로 내게 보내서 사무실을 내겠다고도 했다. 방 한 칸을 사무실로 내서 스크린을 설치하고, 카메라도 장만했었다. 다소 엉뚱한 제안을 해와도 다 받아주는 남편이 더 미웠다. 그런 패션 사업도 어느 시기가 되니 한풀 꺾였다.

     

  학부 공부를 열심히 해서 4학년 때는 총장상과 금메달을 받게 되었다. 육백여만 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신이 난 남편은 거하게 강남의 클럽을 빌려 생일 파티를 열어 주었다. 그 장소에 남편이 맥주며 양주를 보내주었다. 우리 부부는 부근의 커피숍에서 밤 11시까지 쓴 커피를 마시며, 파티가 열리는 시간을 기다렸다. 클럽에 입장을 위해, 이만 원씩 입장료를 내니 팔찌를 주었다. 클럽 전체가 딸의 친구들인 젊은 남녀들로 북적댔다. 딸은 DJ처럼 음악도 틀고 제대로 주최자 노릇을 했다. 그곳에 있으니 나도 젊은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딸을 과잉 충성하며 키웠다. 음식쓰레기 심부름 한번 시킨 적이 없었다. 딸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나와 다툰 적이 많다. 집안 허드렛일을 해보지 않은 딸이 승무원 생활에 적응해서 이젠 11년 차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을 보내려다가 막판에 내가 반대했다. 친구 따라 국제선 승무원 시험을 보았는데, 덜컥 딸만 합격했다. 딸이 비행하는 일정에 맞추어 같이 여행하자고 하는데, 남편은 반대한다. 딸이 비행기에서 고생하는 꼴을 보지 못하겠단다.     

 

  6개월 전 결혼한 딸이 오늘 다녀갔다.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사위를 위해 밑반찬을 몇 개 만들어 보냈더니 사위가 너무 좋아한단다. 가정을 꾸려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이젠 커다란 즐거움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 지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와 세월의 흐름이 있을 뿐”이라 했다.   

  

  이젠 갑자기 당황해서

  “누구세요?”

  하고 딸에게 묻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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