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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미 Nov 27. 2022

지나온 길과 가보지 않은 길

   

  “엄마는 어쩜, 딸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마음은 속이 터질 듯 아픈데, 엄마는 나한테 엄마 학교 상 받는 사진이나 보내주고.”

  딸아! 생각나니? 몇 년 전 12월 31일에 네가 회사의 승진 대상이 되지 않아 속상했던 일이 있었지. 무척이나 기대하였고, 당연하게 승진할 줄 알아서 너는 땅이 꺼질 듯 실망이 컸었지. 바로 그날 교육지원청에서 우수학교로 엄마가 상을 받는 사진을 네게 보내서 너는 그 일로 엄마를 질타했었다. 그때 변명인지 모르지만, 엄마는 네 우울한 기분을 잠시라도 다른 생각으로 돌리려고 사진을 보냈는데 너는 불같이 화를 내고 며칠간 엄마에게 연락도 하질 않았었다. 그 일로 엄마는 사진을 보낸 내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했었어. 네가 연락을 하지 않은 그동안 엄마는 밤마다 베개를 적시며 눈물을 흘렸단다. 모녀 사이에도 관점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사건이었다. 다음 해에 승진하고, 지금의 사위를 만나게 되는 좋은 일이 연달아 생겨서 정말 다행이야.      


  포천 밭의 컨테이너에는 오래된 네 일기장이 다섯 권이 있더라. 고추를 따고, 시금치 씨앗을 심고, 나무를 전정하다가 힘이 들면 쉬면서 네 일기장을 가끔 들여다보게 돼.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일기장인데, 엄마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쓴 글이었다. 딸아! 정말 미안하다. 엄마는 정말 나쁜 엄마였어. 어찌 어린 너를 빈 교실에 홀로 두고, 교직원 회의에 다녀오고, 출장을 갔더란 말이냐? 퇴근하고 꽃처럼 예쁜 너와 함께 있어야 할 시간에, 어떻게 컴퓨터 학원과 영어학원을 갈 수 있었을까?     

 

  11년 전 우리가 키우던 반려견 ‘짱’이 세상을 떠났을 때 생각나지? 그다음 날이 네 회사 면접 날이어서 너는 밤새 울어, 퉁퉁 부은 얼굴로 면접을 보러 갔었지. 네 외로움을 늘 포근하게 감싸주었던 우리 ‘짱’이는 한 달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데, 네가 귀가하는 것까지 보고는 쓰러졌지. 병원에서 치료받고, 링거 맞다가 엄마 품에서 하늘나라로 갔었어. 네가 초등 5학년 때부터 대학 졸업할 무렵까지 함께 너와 지냈던 ‘짱’이 갔으니 네 마음이 어떠했을지 엄마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어릴 때, 유치원이 끝나면 너는 놀이방으로 갔었어. 어느 날 놀이방에서 네가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도 나도 조퇴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지. 병원에 들어서니 피 묻은 네 노란 유치원 체육복이 보였어. 아! 나는 돌아버릴 것 같았어. 네 이름을 미친 듯 불렀다.

  “엄마! 왔어?”

  정작 너는 생글거리며 나와 아빠를 맞았었다. 몇 바늘을 꿰맸는데, 울지도 않고 의사와 농담까지 하는 너를 어쩌면 좋니? 유치원과 놀이방을 같이 다닌 남자애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돌멩이를 장난으로 던졌는데, 눈가가 찢어진 일이었다. 피가 정말 많이 흘러, 체육복이 다 젖었었지. 정작 다치게 한 아이와 부모는 사과 한 번 하지 않았지. 그때 종합병원이 아니라 성형외과에라도 데려갔으면 네 눈가의 상처도 없었을 것인데. 다 커서 수술했어도 그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아 두고두고 내 마음의 보이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에 너를 미국에 유학 보낼 계획이었다. 너는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유학을 위한 공부만 했었는데, 엄마는 갑자기 그 계획을 틀어버렸다. 그 당시에 유학 후 대학 강단에 서는 일이 어렵다고 들었고, 너를 외지에 보내는 일이 맘에 내키질 않았었다. 그런데 너는 불평 한마디 하질 않았어. 네 친구 승무원 시험에 동행해서 너만 합격했었지. 대학원 공부까지 하며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견딘 네가 참 장하다.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번 돈’으로 네가 무엇을 사 올 때면 가슴이 아팠다.      


  얼마 전 회사로부터 일반직 제의가 들어왔을 때, 무척 갈등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회사 역사 이래 처음으로 몇 명을 스카우트한 모양이니, 고민이 깊었겠지. 앞으로 맞이하게 될 새 식구, 미래의 네 아이를 생각해서 그 길을 포기했지만 엄마는 네 결정을 응원한단다. 물론 가지 않은 길이 더 멋있어 보일 수도 있단다. 가본 길에 대한 만족보다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생길 수 있지.    

  

  딸아!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한 네가 미디어로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또 다른 뜻이 있었을 걸로 믿는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고 해도, 그 일 또한 쉽지는 않다는 건 알지? 엄마가 연구학교를 운영했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그 프로젝트는 국내에 없었던 거라, ‘맨땅에 헤딩’이란 말처럼 온갖 어려움 속에서 원서도 뒤지고, 전문가를 만나면서, 힘들게 진행했었지. 교통사고로 일주일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조차 노트북을 끼고 살았었다. 연구학교 발표를 하면서 전국에서 온 선생님들의 감격에 찬 모습,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을 때 진짜 보람을 느꼈었다. 딸아! 너도 엄마처럼 일 욕심이 많아서 승무원 생활 중 영어신문, 마술, 요리 팀에서도 활동을 많이 했잖아? 힘들어도 훗날 보람을 느끼는 일을 네가 선택하면 좋겠다. 엄마처럼 나쁜 엄마가 되지 말고, 가정까지도 잘 꾸려 나간다면 더 좋겠지. 네 남편과 동반자로 서로 의사소통하면서 말이다. 혼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옛날 쌕쌕 오렌지라는 음료가 있었어. 잘 흔들어 마시지 않으면 오렌지가 캔 아래에 내려앉아서 나중에는 음료수가 나오질 않게 되지. 결혼 생활에서 자주 배우자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점점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된단다. 마치 오렌지 앙금이 내려앉아 오렌지 주스를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나중에 네가 네 아이를 나에게 맡긴다면 엄마는 최선을 다해 그 아이를 돌보겠지만 그때도 쌕쌕 오렌지 앙금을 만들지는 말자.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 좋겠구나.      


  요즘 퇴근 후에 함께 골프 수업받는 너희 부부의 영상을 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와. 딸아! 바쁘고 힘들지만, 일부러 엄마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하는 네가 정말로 고맙다. 또 내일 있을 <문예춘추> 신인상 수상에 꽃다발을 보내주어 고맙구나. 비행이 없으면 함께 했을 텐데.     

나의 딸로 와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2022년 11월 24일에 울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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