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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미 Nov 30. 2022

잘했군, 잘했어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 따는 순간, 나는 운전 교습학원에서 주행 연습 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연습 중인 앞 차를 받았다. ‘쿵’하는 소리에 텔레비전에 한눈팔던 남편과 어린 딸이 깜짝 놀라,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가섰는데도, 학원 종사자가 남편의 덩치 탓인지 이만 원에 합의를 보았다. 똑같은 사고를 친 동료는 30만 원 물어줬다고 한다.    

 

  95년도에 드디어 내 차를 새로 샀다.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는데, 잘못해서 옆 차에 닿았다. 조심하려고 신경을 쓴 게 더 가까이 가서 닿게 되었다. 끼익 소리가 연이어 나고 진땀이 흐르는데 옆 차를 보니 내가 만든 가로줄이 일 미터도 더 넘게 생겼다. 이를 어쩌나 걱정했는데 차 번호를 보니 남편 차다. 이리 반가울 수 가!

  “어떻게 해요? 내가 주차하다 당신 차를 긁었어요.”

  퇴근한 남편에게 짐짓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눈치를 살폈다.

  “에이 그럴 수도 있지! 잘했어요. 다른 사람 차를 긁지 않아 다행이네.”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딸을 데리고 퇴근하는 길에 신호등을 제대로 보질 못했다. 빨강 신호등이었다. 그대로 가다가 경찰이 불렀다.

  “어쩌지? 엄마가 머리가 아파 신호등을 보질 못했네.”

  경찰이 불러 세웠다.

  “면허증 주세요. 신호 위반하셨네요.”

  갑자기 딸이 끼어들었다.

  “우리 엄마가 머리가 아프다고요.”

  딸의 큰 소리에 내가 더 깜짝 놀랐다.

  “그럼 제일 작은 걸로 끊어 드릴게요, 안전띠 미착용 만 원 범칙금 내십시오.”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앙칼진 목소리에 지레 놀랐는지 경찰이 후하게 마음을 썼다.

  그날 저녁에 남편을 만나 퇴근길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허허 잘했네, 난 오늘 택시 뒷자리에 버려진 만원 주웠어요.”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모르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새 차를 사서 남편이 운전하는 출근길이었다. 경사진 길을 오르는데 뒤차가 우리 차를 받았다.

  “에이! 새 차를? 누군가 혼 좀 내줘야지.”

  차에서 내렸다. 우리처럼 부부가 타고 있었다. 나와 보니 나와 같은 학교 근무하는 동료 P 선생님과 그 남편이었다. 그 남편도 전에 나와 같은 학교에 근무한 분이다. 반갑다고 서로 악수하고 다시 주행을 계속했다.

     

  남편이 석촌 사거리를 주행하는데 신호가 노란색으로 바뀌어 급정거했다. 뒤에 따르던 경차가 우리 차를 받았다. 차에서 여자가 내리더니 갑자기 치마를 걷어 올렸다.

  “내가 장애인인데, 당신 잘 걸렸어.”

  그녀가 보인 다리에 금속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남편은

  “안전거리 미확보로 댁이 잘못이 있어요. 내 차가 긁혔지만, 그냥 가세요.”

  지금 법규와 달리 그 당시에는 안전거리 확보하지 못한 뒤차가 잘못이다.

  “그럼 누가 잘못을 했는지 따져보게 경찰서로 갑시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그녀가 씩씩거렸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경관이

  “아줌마가 잘못했네. 안전거리 미확보이니 범칙금 딱지 받으쇼.”

  통 크게 마음 써준 남편 말을 들었다면 딱지를 받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공연히 경찰서까지 가서 그 지경을 만들었다.


  나는 늘 남편에게 공감력이 부족하다고 타박한다. 내가 무슨 일로 마음 아파할 때, 위로는커녕 나무라기만 했다.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해서 젊어서부터 내 속을 태운 적이 많지만, 의외의 통 큰 면이 있다. 가령 업무나 강의 일로 바빠서 시댁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때, 혼자 가서 그럴듯한 변명으로 그 자리를 평정시킨다.

  “집사람은 지금 중요한 강의를 하러 갔습니다.”

  친구들과 긴 여행을 간다고 해도, 학교 워크숍 참석도 싫어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계지출 문제로 참견하는 일도 없다. 퇴직 후 글 쓰는 일도 그렇다.

  ‘돈이 나오나? 맨날 노트북 앞에서 시간 보내느니, 반찬 한 가지라도 더 만들지?’

  라고 짜증을 낼 수 있는데, 서재를 만들어 주고, 내가 노트북 앞에 앉으면 방해를 하지 않는다.      


  며칠 전 천호동 로데오 거리를 지나갔다. 노란 물감이 부분적으로 쏟아지는 모습의 지하도 캐노피가 보였다. 설치물 위에는 붓다만 모습의 페인트 통이 두어 개 올려져 있었다.

  “저 사람들이 페인트 통을 붓다 말았네. 뭐가 그리 급해서.”

  의아하게 생각한 내가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게 아니고 그건 바로 설치 예술이라는 거야.”

  ‘어허? 이 사람이 그런 말도 할 줄 알다니? 내 남편 맞아?’

  가끔 나를 놀라게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응원해주고, 나를 믿어준다. 가끔 내가 쓴 글을 읽어주면, 옆에서 평도 해준다. 가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아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의기소침할 때나 실수할 때, 이런 말을 해주면 좋다. 그리고 계속 말해주길 바란다.     

  “허허,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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