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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었던 자리에 홀로 남아본 사람만이

36도의 기억

by 궤적소년

집, 그러니까 둘뿐인 그 주방에서.

재잘거리며 요리를 도와본 자만이,

같이 도란도란 밥을 먹었던 자만이,

설거지하던 그이의 등을 꼬옥 안아본 자만이,

그 자리에서 홀로 밥을 짓고 시를 지어본 자만이,

사람의 온기에 파묻힐 수 있다.

이는 김소연 시인의 <마음 사전>을 읽고 떠올리게 된 문장이다. <마음 사전>에선 '체취에 갇힌다'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체취에 갇혀봤기에, 나 역시 온기에 사무쳐봤기에.

이미 끌어안아봤던 따스함에 대한 그리움.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당신이 그립다.

36도. 36도를 잊지 못해서. 36도를 사랑해서.

이 자리에 홀로 남아 밥을 지어먹는다.

문득, 내가 짓는 건 밥이 아닌 시임을 깨닫는다.

당신이 남긴 이 생이, 당신이 남긴 이 시가 내 삶을 지탱해주리라 믿는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흰 쌀밥에서 당신의 체취를 맡는다.

비록 혼자여도, 식탁 건너편엔 늘 당신의 웃음소리가 앉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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