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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해하는 용기다

by 궤적소년

“사랑해.” 이 간단한 말 속에 담긴 무게를 우리는 깊이 헤아려 본 적 있을까? 사랑을 고백하고 받을 때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이해는 사랑의 증거라는 믿음이 굳건하다. 하지만 완벽한 이해란 정말 가능한 걸까? 오랜 시간을 거쳐 조금씩 알게 된 건, 이해란 때로 내가 가진 틀 안에 상대를 맞추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바라보는 만큼만 상대를 이해하는 셈이다. 그 좁은 틀 속에 상대를 가두는 일에서, 오히려 진실한 사랑은 멀어진다.

그러면서도 ‘오해’는 왜 이렇게 나쁜 의미로만 쓰일까? 사실 오해는 ‘모름’을 인정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상대에게 무리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불확실한 공간을 허용할 줄 아는 태도 말이다. 오해 속엔 ‘열린 여지’가 있고, 그 여지가 사랑의 진짜 밭일 수 있다.

사랑이란 완성된 답안을 맞추는 일이 아니다. 미처 맞춰지지 않은, 알 수 없는 빈칸과 오답조차 품어내는 과정이다. 이해하려 애쓸수록, 나는 상대를 한정하고 고정하게 된다. 그리하여 오히려 오해가 사랑의 다른 얼굴처럼 보일 때가 있다. 불완전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진짜 사랑이다.

내 경험도 그렇다.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던 순간, 불안하고 버거웠다.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와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멀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상대가 이해되지 않고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도, 그 불확실함을 고요한 마음으로 안아주려 할 때 오히려 마음의 거리가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완전하지 않은 그 존재 그대로를 존중하는 일, 그것이 관계의 힘임을 조금씩 깨닫는다.

“사랑해”라는 말에는 완벽한 알고 가짐이 아니라, 불완전한 그 무엇까지 함께하겠다는 다짐이 숨어 있다. 우리 모두의 관계는 오해라는 불확실한 토양 위에 자라난다. 오해가 있기에 서로 간의 간극과 틈이 생기고, 그 틈새를 메우는 과정을 통해 사랑은 더 깊고 넓어진다. 내 마음은 때때로 반짝이는 유리처럼 투명하지만 깨지기 쉽다. 가까워질수록 상대가 흐릿해지고, 저마다 마음 한켠에 두려움과 불안이 자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짜 그를 만나고 싶다.

앞으로는 사랑을 ‘완전한 이해’라는 무거운 굴레에 가두지 않고, ‘오해하는 용기’로 바라보려 한다. 사랑이란 모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과정임을 믿는다. 부족함과 모름마저 껴안는 용기야말로 진짜 용기다. 그래야만 무너질 듯 위태로운 마음도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 테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나 또한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익숙한 마음의 돌봄과 다르게 때로는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단을 키우려 한다. 관계가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오히려 불완전한 그 모습이 인간적이고 더 소중하다는 걸 알기에,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당신이 지금 사랑에 대해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해 답답하다면,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랑은 답을 맞추는 퀴즈가 아니니까. 다만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오해를 감싸 안으며 살아가는 용기일 뿐이다. 그 오해하는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 더 자주 찾아오길, 마음 깊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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