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방이 나를 닮았다.
네가 떠난 이곳에 홀로 앉아 나는 또다시 너를 그려본다.
벽지 몇 군데가 너의 온도로 기운 듯하다가, 낡은 책상 위에 너의 그림자가 흩어진다.
창문을 반쯤 열어두면 바람이 지난 사랑의 흔적처럼 방을 맴돈다.
이 도화지는, 그렇게 조금씩 너로 채워진다.
사랑은 어쩌면 나를 비워내는 일, 너라는 세계를 내게 들여오는 일. 비움의 끝에서 나는 나를 잃는다.
그래서 사랑은 참 단순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별은, 남은 자리마다 추억이 자라나는 긴 밤의 작업.
빈 공간은 오히려 더 묵직해진다.
사라졌던 따뜻함과,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그리움, 마른 먼지까지도 소중해보인다.
나는 그 모든 감정을 조용히 끌어안는다.
알고 보면 사람은, 사랑은, 결국 ‘모르겠다’라는 감정이다.
너를 알면 알수록, 나는 너를 모른다.
사랑이란, 모르는 너에게 내 전부를 거는 용기,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더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것일 테니까.
나는 수없이 이 방을 채우고, 또 비워왔다.
누군가의 삶이 내 삶에 스며들고, 어느새 그 자리에 공허만 남을 때, 그 비어버림조차 사랑이 남긴 온기라는 걸 이제는 안다.
너를 품은 뒤로, 나는 스스로를 비우는 일에 익숙해졌다.
비워낸 자리에 너라는 존재가 밀려 들어왔다.
그 순간만은, 사랑을 안다는 게 무엇인지 두려울 만큼 선명했다.
36도의 온기, 너라는 계절, 내 방의 공기가 바뀌는 순간,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모르는 바보가 된다.
그리고 이제, 네가 떠난 자리마다 쌓여가는 그리움과 쓸쓸함, 추억과 아픔이 내 방을 가만히 환하게 밝힌다.
너로 가득 찼던 마음을 비워낸 뒤, 그 빈 곳마다 새로운 감정들이 조용히 피어난다.
공허라고만 생각했던 이 공간이, 알고 보면 내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텅 빈 방에서 다시 너를 안고, 그리움과 슬픔, 때때로 미소까지도 곁에 둔다.
사랑하고, 잃고, 다시 그리움으로 채우는 일
어쩌면 그 반복이 내 삶이고, 이렇게 너로 인해 바뀐 내 방과 내가, 서로를 닮아간다는 걸 느낀다.
텅 빈 방은, 결국 또 다른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