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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내게 어떤 계절 같았다

by 궤적소년

계절처럼 스친 사람들이 적은 것 같다가도, 문득 회상해 보면 만만치 않은 수임을 깨닫는다. 사계절을 함께 보내며 영원할 것만 같던 인연, 늦은 봄 찾아와 장마처럼 서로에게 모든 걸 쏟고 끝나버린 인연, 뜨겁던 때를 뒤로 하고 한겨울 눈보라 속 냉기처럼 끝을 맞이한 인연이 그랬다.

1년을 함께 보낸 이는 모든 계절이 여름이었다. 서로에게 데여서 돌아서기도 했지만, 그 연은 다시 이어졌다. 뜨겁기만 했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백수였던 우리는 서로를 놓아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상처 주기 싫어 꼭꼭 묻어뒀던 이별의 장문은 이별통보를 받은 후에야 겨우 보냈다. 많이도 아픈 사랑이었다.

늦은 봄 찾아왔던 이는 여름에 날 떠났다. 그때의 나는 너무도 서툴렀고, 쉽게 상처를 줬다. 열정만 넘친 탓에 그 열정으로 그를 다치게 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때를 떠올리면 자책을 한다.

이보다 더 어린 시절의 사랑은 헤어질 때까지의 여정이 길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잠수 이별이었다. 최악이었지만, 최악이었던 건 나였으리라 짐작하기에 미워할 순 없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랑이 아팠다. 그런 내 곁에는 늘 노래가 있었다. 나는 가수 김광석을 좋아한다. 남아있는 몇 안 될 라이브 영상 속 그의 모습은 여전히 청춘에 멈춰 있다. 하모니카를 받치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은, 영상으로만 봤음에도 어딘가 그립고 아련하며 쓸쓸하다.

그의 노래 중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가 있다. 처음엔 제목이 낯설고 이해가 안 가서 생소했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과 사랑하며 부딪힐수록 이 노래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겨울의 밤에도 따뜻하게 안았던 골목의 그 온기. 1년을 함께 했지만, 너무도 아프게 끝났던 사랑. 그렇다. 그 사랑 이후로도 이 노래를 듣곤 했다.

이 노래는 버릴 가사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버릴 수 없는 가사만으로 채워져 있음이 분명하다. 제목이자 핵심 가사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처음엔 내게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너무도 아팠던 그 사랑을 부정하며 잊으려 했던 것이다.

지금은 이 단계를 지나온것 같다.

그저 사랑을 사랑으로 남기는 것. 사랑이 사랑으로 있으려면 긍정과 부정이 모두 필요했다.

지난 계절이, 지난 사랑이 아직 여기 남아 나를 따스하게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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