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순간과 운명 사이

by 궤적소년

카르페 디엠, 이는 ‘현재를 즐겨라’로 번역되는 라틴어이다. 나는 이 말을 한동안 가슴에 품고 살았었다. 꽤 오랜 기간이었다. 그러다 니체의 아모르 파티를 접한 후로는 아모르 파티를 품고 산다. 즐기는 쪽에 초점을 두고 살았을 땐, 아무래도 즐길 수 없는 일들에 한해서는 한없이 괴로웠다. 피폐해져 가던 때도 있었으며 영영 외면해버릴 뻔 한 것들이 있었다.

아모르 파티를 알게 되고나서는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즐길 수 있는 것이든, 즐길 수 없는 것이든,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그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을 사랑하란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 말을 접한 뒤로 나는 감정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졌다.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없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애초에 감정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채 그저 존재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모든 감정이 소중해졌다. 안 좋게만 생각했던 감정을 좋게도 바라볼줄 알게 되자 자연스레 떠오른 말이 있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일텐데, 나쁜 감정이 있기에 좋은 감정이 좋은 감정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내 생각은 변해왔고 이제 나는 운명을 사랑한다. 내 사랑의 정의는 사랑에는 분명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사랑한단 의미가 있다.

영원회귀도 어느 한 구석에 잘 두고 사는 단어다. 영원회귀는 간단히 말해서, 지금 이 삶이, 지금 이 선택들이, 지금 이 모든 순간들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서 사랑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 이 라틴어로 마무리를 지어보려 한다. 죽음을 기억해야 운명을 사랑할수도 현재를 즐길수도 있기 마련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한 인간은 유한한 자신의 운명을 자각할 수밖에 없다. 운명을 자각한 순간, 현재는 더욱이 소중해진다.

나는 니체의 말대로 영원회귀 하는 운명인지 아니면 다른 사후세계가 있는지는 모른다. 애초에 중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니까, 무엇도 남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카르페 디엠을 접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아마 ‘즐겨라’라는 말의 함의를 잘 몰라서 즐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이고 여기이다. 아모르 파티도 완벽히 이해 못했을 가능성을 열어둔 채, 내게 남은 일은 운명을 사랑하는 일뿐이다.

내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켠에 둔 채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벚꽃 축제를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