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 않을 때 사랑은 끝난다.
뒤집어 얘기하면 아쉬울 때 사랑은 지속된다는 말이다.
연애를 해봤다면,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연인과 떨어져 집으로 가기 아쉬운 것,
무언갈 더 하고 싶었는데 하루가 짧았던 것,
그리고 더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하는 것 등이 그렇다.
우리는 이 감정에 ‘아쉬움’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홀로 돌아가는 길이 아쉽고 쓸쓸할 때,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런데, 이런 아쉬움은 곧 사랑의 끝을 알릴 때도 있다.
더 이상 아쉽지 않을 때, 그러니까 더 이상 바라는 상향점이 없을 때 그 사랑은 종말을 맞이한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 아닐지라도 사람이라면 상승 욕구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상승 욕구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하고, 나아가 결혼을 하고, 한날한시에 죽는 것을 꿈꾼다.
문제는 이런 상승 욕구가 없을 때인데, 이쯤 되면 손을 들고 내게 묻고 싶을 것이다.
정녕 아쉬운 게 없어서 헤어지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아쉬워서 이별을 고하진 않는가? 이 경우는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뜯어보자.
아쉬운 게 없다는 건 상술한 상승 욕구가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항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보던 둘이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은 필시 그 욕구가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아쉬워서 이별을 고한다는 생각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옳지 않다.
왜냐하면 아쉬워도 정말로 사랑한다면,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면 잡은 그 손을 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부족하다는 건 어쩌면 나의 왜곡된 욕망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상대를 점유물로 보기 때문인 것이다.
만약 상대를 점유물이 아닌, 존재로서 받아들인다면 얘기가 다르다.
존재 자체만으로 사람은 소중하고 또 사랑스러운 거니까.
그러므로 인해 그런 사람과 헤어지기 아쉬운 거고 아쉬우니 계속 사랑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쉬우니 사귀던 사람을 붙잡은 이도 그렇게 많은 것 아닐까?
아쉽다는 건, 우리가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