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내 영화과 동기 조지선이 시한부 암 환자라고?
빼빼 마른 이유가 암 때문이었구나. 암이라는 얘기에 말문이 막혔다. 졸지에 암 환자를 놀린 진짜 나쁜 놈이 되어 버렸다. 미안함과 죄책감에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억지로 위로의 단어를 쥐어 짜냈지만 지선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딱히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고 화제는 돌려야겠고 해서 내가 데뷔하자마자 폭망 이후 10년 간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구구절절 앓는 소리와 진정성 있는 하소연을 늘어놓았지만 역시나 관심이 없었다. 원래 그랬다.
지선은 남 얘기엔 관심이 없다. 과거에도 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난 내 얘기 말고는 관심 없으니까 그만 좀 닥쳐줄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진짜로 할 이야기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실례를 무릅쓰고 무슨 암인지 어떤 상태인지 물어보자 말 없이 25년 전 학창 시절에 매고 다니던 누리끼리한 백팩을 열더니 주섬주섬 꾸깃꾸깃한 A4 뭉치를 꺼냈다. 설마.. 시나리오?
“이것 좀 읽어봐.”
“뭐야?”
“내 시나리오. 죽기 전에 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거 한 번은 보고 싶어서..”
“진심이야?”
학창시절의 지선은 자기 시나리오를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표절당할까봐서 이다. 게다가 나는 자기 졸업 작품을 표절 했다고 주장해 온 장본인인데 시나리오를 읽어달라니.. 하지만 시한부 암 환자라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앗 잠깐! 다시 집어 넣어. 내가 또 표절하려면 어떡하려고?”
“너도 인간이면 설마 그러진 않겠지. 믿어.”
시나리오가 너무 두꺼워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얼추 300장쯤 되는 것 같았다.
“우와 진짜 두껍다. 이걸 언제 다 썼어? 시나리오 맞아?”
“응. 10년 동안 그거 하나만 썼으니까. 내 머리속에 있는 걸 다 쏟아 넣었지.”
“대단하다. 몸도 성치 않은 애가 적당히 하지.. 그런데 이거 분량이 영화 시나리오 같진 않은데? 드라마야?”
대충 몇 장 읽어보니 드라마도 시나리오도 아니었다. 독백이었다. 안쓰러웠다. 10년 묵은 독백이라니..
“영화든 드라마든 뭐든 상관없으니까 데뷔시켜 줘.”
“뭘로 데뷔하게? 감독으로?”
“감독만 고집하진 않아. 작가도 괜찮아. 드라마도 나쁘진 않고. 드라마 작가가 돈은 잘 벌잖아?”
“데뷔하자마자 폭망하고 10년 간 빌빌대며 내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데 무슨 재주로 널 데뷔시키냐?”
“그래도 주변에 아는 사람은 있을 거 아냐? 그 바닥에서 구른 세월이 있는데..”
“날 믿는 거야?”
“제작사랑 연결만 시켜주면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게.”
“너도 아는 선배는 있잖아? 아 맞다. 교수님들도 있네! 글 특이하게 쓴다고 예뻐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딴 거 없으니까 네가 데뷔시켜 줘. 폭망은 했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네가 제일 잘 나가.”
조지선 입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간다는 말이 나오다니.. 내 귀로 듣고도 믿어지지가 않으면서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졌다. 확실히 20년이 긴 세월이긴 한가보다. 그 조지선이 빈말을 다 하고 은근히 사회화가 되어 있었다.
“알았어. 노력은 해 볼게.”
“솔직히 나 재능 있는 거 알잖아? 너도 내 재능을 이렇게 사장 시키고 싶진 않지?”
“혹시 공모전 같은덴 내 봤어?”
“공모전 얘기는 하지 말라고!”
지선이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소리를 질러서 당황스러웠다. 미친 사람 같았다.
“그래 미안.. 넌 재능이 있으니까 잘 될 거야. 아무렴 그렇고 말고.”
내일 모레 오십에 무슨 얼어죽을 재능 타령이냐가 진심이었지만 시한부 암 환자에게 그런 말은 예의가 아니므로 어른답게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는데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음성 파일이 도착했다. 열어보니 파일 안에는 방금 전 우리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의도를 할 수 없어 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통화는 안 되고 문자가 왔다.
‘나중 에니가 딴 소리할수도있 잖아. 니가내 시나리오 를받았다 는영수증 같은 거라고생 각해줘.’
역시 조지선이다. 피해망상 또는 과대망상 중증이 확실하고 나를 만날 게 아니라 정신과 의사를 만났어야 했다. 다행인 건 조지선이 난니맨은 아닌 것 같다는 사실이다. 난니맨은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스타일이다. 지선은 그 쪽과는 거리가 멀다. 지선이 원하는 건 그저 나를 통한 제작사 소개 및 작가 데뷔였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공모전 올인 인생의 부작용이다. 생각하면 할 수록 안쓰러웠다. 영화과 졸업과 동시에 듣보잡 신생 영화사에서 주최하는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 됐을 때까진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장 내년에 칸느에 가는 줄 알았겠지. 하지만 칸느는 커녕 올해 공모전에 당선됐다고 내년에 데뷔하는 건 아니다. 보통은 그게 공모 당선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력이 될 확률이 크다.
십중팔구 각본 계약을 해 준 영화사는 제작 능력이 없고 천신만고 끝에 제작 가능성이 보여도 될 듯 말 듯 하다 말 것이고 새로 쓴 시나리오는 더 이상 공모전에 당선되지 않으며 무작정 유명 제작사에 투고를 해봤자 번번히 퇴짜를 맞을 것이다. 아까 공모전 얘기에 화를 내는 걸 보니 이미 공모전에 수없이 탈락했을 것이다. 더 이상 낼 곳이 없으니까 되도 않는 협박을 하면서 나한테 떠 넘겼겠지.
조지선의 시나리오는 전혀 읽고 싶지 않았으나 혹시나 창한의 ‘가족사냥’처럼 걸작일 지도 모르므로 읽어봤지만 역시나 지선 만큼이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일단은 시나리오 형식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에러였다.
등장인물의 독백이 대부분인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 쯤 형태였는데 너무 길고 장황 했으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고 비문의 연속에 시종일관 맞춤법도 이상했다. 본인 만의 문체를 나름의 스타일이랍시고 미는 듯 한데 문학적인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너무 길었다. 대하 장편 소설도 아니고 A4 300장은 읽는 이에 대한 폭력이다.
조지선의 멘탈이 온전해 보였으면 당장이라도 전화해 신랄하게 까 주고 싶었으나 시한부 암 환자에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지금까지처럼 모르는 사람으로 지내는 게 좋을 듯 했다. 앞으로 만날 일은 없을테니까.
지선은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지 새벽에 또 다시 메일을 보냈다. 새로 쓰고 있는 작품이라며 자신이 얼마 준 꾼 신기한 꿈 이야기를 보내왔는데 역시나 무슨 말인지 해독이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얘기할 상대가 없어서 외로운 듯 했다.
문득 시한부 암 환자라는 말이 과연 사실인가 의심스러워졌다. 빼빼 말랐다는 것 말고는 암 환자라는 증거 비슷한 것도 없지 않았나? 곧 죽는다고 해야 내가 자기 시나리오를 영화사에 소개시켜 줄 거라 생각하고 거짓말을 한 게 아닐까?
거짓말이든 시한부 암환자든 뭐든 제 정신이 아닌 건 확실한데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서 동민에게 전화해 지선을 만났다고는 안 하고 근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연락을 주고 받은 동기는 동민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민의 얘기로는 자신도 지선과 통화한 지는 오래 됐고 우연히 알게 된 지선의 동네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지선이 오랜 작가 지망생 생활의 부작용 때문에 10년 전부터 정신과를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정신병자의 이야기는 아무도 믿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신의 졸업 작품을 표절해서 ‘꼴리는 영화’를 만들다는 주장에는 결백하지만 25년 전 여름에 우리 둘 사이에 키스라는 행위가 있었던 건 사실이므로 조지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진 말아야 한다.
대충 아무개 PD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으니까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면 되겠지. 그 다음은 정중하게 거절당했다고 하면서 또 다른 PD에게 보여줬다고 하면 되고. 시한부 암 환자라는 말이 사실인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고.
***
차민오와의 미팅은 양평에 있는 차민오의 개인 작업실에서였다. 지난 번 미팅은 간보기였고 이번이 드디어 본격적인 공동 작업을 위한 미팅이었다. 게다가 백연희 이사나 석 팀장 없이 차민오와의 독대 자리였다.
감독합격!
드디어 감독으로 인정 받은 것이다. 매니저가 알려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찾아간 곳에는 갤러리 같은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자 건물 안에서 차민오가 직접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차민오 같은 탑스타와 1:1로 만나다니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고 긴장도 됐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편안한 미소로 화답했다.
작업실이 아주 근사하다고 칭찬하니 이곳은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편하게 친구들도 만나는 공간인데 비밀 아지트여서 이 공간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고 했다. 심지어 태준이조차 여긴 안 와봤다고 했다. 우리는 넓직한 1층 로비의 대형 소파로 자리를 옮겼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긴가민가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수정고 보고 놀랐습니다. 최경진 감독님이라면 충분히 긴 여행을 함께 해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겸손을 떨려다가 이제부터는 감독답게 행동해야 할 것 같아 꾹 참았다.
“그 전에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당연하죠. 얼마든지요.”
“감독님 이번 시나리오를 워낙에 감명깊게 읽어서 데뷔작을 찾아 봤거든요. ‘꼴리는 영화’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시나리오를 쓰신 분의 데뷔작 같지가 않아서요. 정말 ‘꼴리는 영화’가 감독님 작품 맞나요?”
“맞습니다.”
“아 나.. 진짜 어떻게 그런 영화로 데뷔하신 분이 이런 시나리오를 쓰셨을까요? 일취월장 하신 비결이 궁금한데.. 혹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
“글쎄요.. 느낌이 왔다고나 할까요?”
“어느 날 갑자기 번쩍?”
“그런 셈이죠. 사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준비하던 작품들이 계속 엎어지다보니 더 이상 글도 안 써졌고요.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젠 쓸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어요.”
“느낌이란 얘기군요. 흠.. 잘 모르겠네요. 뭐 하나 더 물어봐도 될까요?”
“물어보시죠.”
“감독님 싸움은 잘 하세요?”
“싸움요? 워낙 오래 돼서.. 싸움은 왜요?”
“사람 때려본 적은요?”
“글쎄요.”
“맞아본 적은?
“맞아본 적이야 있죠. 군대에서요. 저희 땐 구타 있었거든요. 글구 보니 때린 적도 있긴 하네요. 하하하.”
질문이 왜 이 따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