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D-Lab 수업에서 배운 팁
D-Lab에서의 D는 Design을 뜻한다. 어떻게 하면 공학을 이용해서 개발도상국에서 디자인을 확장 가능하게 할지에 대해 가르쳐주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수업이다. 당시 TA 중에 한 명이 실제로 개발도상국에서 구급차를 만들어서 상용화를 한 경험이 있는 기계공학과 전공의 학부생이였다. MIT에서는 전공과 상관없이 실제 임팩트를 낸 경험이 있다면 대학원생들이 듣는 수업이더라도 나이와 상관없이 인정을 하고 지식을 나눌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AI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UX 디자인이 더욱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복잡한 문제를 확장 가능성이 있는 솔루션으로 해결하는 UX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서 D-Lab: Design for Scale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내가 신발 밑창의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줄은 몰랐다. 화면에만 국한된 것이 UX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무지함이다.
나는 그 수업에서 멕시코의 비영리단체와 사회적 기업에서 만드는 신발의 밑창을 만들었다. MIT에서 놀란점은 MIT의 많은 수업들이 전세계의 기업들과 컨설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꽤 자주 실제 컨설턴트처럼 그 나라를 비행기 태워서 학기 중에 출장도 보내준다. MIT는 기업에게 MIT 학생들의 열정과 디자인 지식을, 기업은 학생에게 실제 다루는 문제의 제공과 자원을, 학생은 두 주체로부터 툴과 실질적인 경험을 얻는다. 실제 컨설턴트 팀처럼 팀을 꾸려서 멕시코에 있는 신발 소비자들의 보다 편한 신발 사용자 경험을 위해 공학적인 지식을 동원했다.
멕시코에서의 기후와 지형을 신발 밑창이 버틸지, 활동량이 많은 타겟 소비자층이 신발을 꺾어도 신발 밑창이 꺾이지는 않을지, 이 신발 밑창의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는 있는지, 다양한 시도를 했다.
D-Lab: Design for Scale을 수강하기 전까지는 UX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페르소나 설정이라고 배웠다. 페르소나는 사용자 집단을 대표하는 사용자 특성을 조합한 다음에 그 대표적인 사용자를 중심으로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방법이다. 페르소나는 UX 케이스 스터디당 보통 1개나 2개 정도 있다.
하지만 AI 시대에서 페르소나의 인기는 떨어졌다. 페르소나는 보통 하나의 대표적인 가상의 사용자를 설정하는데, AI가 잘하는 것은 정확하고 구체적인 프롬프트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페르소나가 한두개밖에 없다면, Figma Make나 Lovable등의 바이브 코딩 기능이나 툴을 통해서 한시간도 안 되어서 디자인 전공이 아니더라도 그럴듯한 인터랙티브한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쇼핑몰 플랫폼들의 UX 디자인은 이제는 어느정도 정형화되었다.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타겟인 신발 쇼핑몰을 디자인한다고 가정하자.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타겟인 신발 쇼핑몰을 디자인해줘"라고 AI한테 물어본다면, 그럴듯한 외관을 만드는데 10분 정도 걸린다. 하나의 페르소나는 복잡하지 않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쇼핑몰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전문적인 플랫폼인 Shopify가 아니더라도, 포트폴리오 웹사이트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던 Squarespace라는 플랫폼에서조차 쇼핑몰은 AI 도움을 받아서 10분만에 만들 수 있다. 페르소나가 보통 단순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주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거의 채용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우리 팀만 하더라도 올해 주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채용하지 않고 중간급 이상의 경력이 있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을 채용하려고 힘쓰고 있다. 그리고 올해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인터뷰에 초대된 디자이너들은 케이스 스터디에 페르소나를 아예 포함하지 않거나, 디자인 공유할 때 페르소나에 집중하지 않았다. 비즈니스 임팩트에 집중했고, 관련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차이가 다른 사용자 경험을 만드려면, 이제는 페르소나보다 밸류 체인에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20대 초반의 여대생들이 좋아하는 신발 종류가 하이힐이라고 하자. 그런데 신발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하이힐을 만들기에 부적합하고, 유행에 민감한 하이힐을 빠르게 트렌드에 맞춰 납품하기에는 신발이 수제작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신발이 제작되고 남품되는 시간의 텀이 길다. 그런데 페르소나에만 집중하다보면 하이힐을 쇼핑몰에다가 팔고 사용자 경험을 그 위주로 디자인하자고 제안하는 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 AI를 사용해서 페르소나 정보만 입력하고 쇼핑몰을 제작하라고 하면 비슷한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다.
그런데 밸류 체인에 집중하면, 훨씬 더 비즈니스 목표에 맞고, 비즈니스 입장에서 사용자에게 줄 수 있는 최적의 가치를 강조할 수 있다.
밸류 체인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밸류(Value, 가치)가 무엇이고, 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 어떠한 이해관계자들이 어떠한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며 얽혀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다이어그램이다.
밸류 체인을 파악하고 나면, 다음의 장점이 있다.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때 강조하면 가장 좋은 제품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이 용이하다.
사용자가 어떠한 가치를 회사에 제공하고, 회사는 사용자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파악이 용이하다. 사용자가 콘텐츠를 업로드하는게 회사에게 큰 가치인 경우가 있고, 사용자가 돈을 지불했을 때가 더 큰 가치인 경우가 있다.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 파악이 용이하다.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정의, 사용자에 대한 정의, 가치에 대한 정의는 회사 내부의 동의 하에 정해져야하기 때문에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승진하기 전에 회사에서 향후 3개년 UX 디자인 로드맵 계획을 세우는데 참여했는데, 향후 3개년 로드맵 계획이라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었고, 그 방대한 UX 디자인 로드맵 계획을 회사 임원들과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15분, 혹은 더 짧게 모든 계획을 소통해야했다. 이 때 3개의 페르소나가 나왔는데, 하나의 페르소나당 1년마다 어떤 사용자 경험을 구축하고 발전할지 설명하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었다.
UX 디자인이 실현 가능하고 확장 가능하려면 디자인만 잘해서 훌륭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 임원, 개발자, 프로덕트 매니저, 세일즈 등의 이해관계자들의 납득(Buy-in)이 있어야지 가능하다. 밸류 체인은 이해관계자들을 납득할 때 가장 훌륭한 도구 중에 하나가 된다. 나는 향후 3개년 UX 디자인 로드맵을 만들 때 밸류 체인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이 제공하는 가치와 디자인을 통해 받는 가치를 정리하자고 제안했다.
팀장은 이 일 이후로 2주도 지나지 않아서 나를 따로 부르더니 창의적인 방법으로 특진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승진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지만, 밸류 체인 제안을 한 후 휴가 하루 전날에 따로 부르더니 휴가 중에 특진을 시켜주었다. 나는 내가 제안한 밸류 체인의 가치가 나의 가치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MIT D-Lab에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가치가 한눈에 파악되는 밸류 체인을 구성하는 방법을 배웠고, 회사에서 페르소나를 고도화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밸류 체인을 제안해서 특진에 도움이 되었다.
내가 향후 3개년 계획이라는 예시를 들었지만, 하나의 기능에 대한 UX 디자인을 설계할 때도 밸류 체인이 비즈니스 목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디자인을 통해 얻을 사용자 가치와 비즈니스 임팩트를 파악하는데에도 용이하다. 다이어그램을 이용해서, 이러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데,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때 어떠한 가치에 더 집중할지에 대한 논의를 회의 때 이끌어가면 좋다. 또한, 사용자 경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곳에 대한 파악도 더 쉽다. 아까 신발 쇼핑몰 플랫폼을 예시로 들자면, 사용자 경험은 신발을 구경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신발을 배송받는것도 사용자 경험에 포함이 된다. 페르소나에만 집중한다면 놓칠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밸류 체인을 보다보면 배송 단계에서 어떤 디자인을 추가해서 오래 걸리는 배송이 내가 수제 제품을 지원하는 마음 따뜻한 소비자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할지에 대한 고민을 밸류 체인을 보면서 얘기하기가 용이하다.
AI 시대에서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때 여러 명의 사람을 하나의 사람으로 특정하는 페르소나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제품 생태계를, 그리고 그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밸류 체인을 활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