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좋아해 보기로 했다.

내 딸이 좋다는데.

by 양윤미

원래 주근깨 투성이었던 나는 피부가 하얀 편이었다. 하얀 얼굴에 주근깨가 콕콕 박힌 모습을 평생 봐와서 그런지 잡티 없는 말끔한 피부는 후광이 비치는 연예인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그럼에도 비비크림 하나 딸랑 바르고 용감하게 다녔던 나의 20대는 어렸고 젊었고 지금보다 건강했다.


인생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주근깨는 더 늘어났고, 결혼한 후 가족계획을 시작한 모두가 그렇듯 몸속에 한 생명을 품으며 기미가 하나, 둘 생겼다. 유산의 아픔으로 큰 우울감에 젖어 지낼 때 기미는 더욱 짙어졌다. 연달아 연년생을 낳고 나니 없던 기미가 하나 더 생겼다. 그래서 거울은 더더욱 안 보기 시작했다. 괜히 화가 나서 남편에게 화풀이도 했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너희 남자들에게 그 어떤 육체적인 손실이 있느냐며 싸잡아 욕하기도 했다. 머리를 감다가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지는 날이거나, 골반과 허리에 통증이 심한 날에는 더 화가 났다. 담담히 위로를 전하며 안아주던 남편도 속이 상하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의 다정한 말과 위로에도 불구하고 거울은 보기가 힘들었다.


커버력 좋은 화장품을 사기 시작했고 화장도 좀 더 진해지고 좀 더 꼼꼼하게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래 봐야 나의 화장 시간은 총 10분에서 15분이다. 예전에는 화장하는 데 5분 남짓이면 끝이었으니 어느 수준이었는지 짐작이 가는가. 그렇다. 나는 화장을 못하는 편이다. 꼼꼼히도 못했고 화장품 종류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용감한 주근깨 투성이 여성이었을 뿐이다. 내가 5분 10분 만에 완성한 그림이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어쨌든 그렇게 똥 손인 내가 나름대로 얼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잊을만하면 다시 자라나는 하얀 새치들도 주기적으로 염색했다. 삼십 대 중후반에 백발이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피곤하고 지친 눈에 생기라도 좀 부어주려 화사한 아이섀도를 뿌리고 멍해 보이는 눈가에 아이라인을 그려 넣는다. 듬성듬성 잡초같이 난 눈썹을 정리하고 머리카락 색과 비슷한 아이브로우를 그린다. 짙어진 기미 위로 쿠션을 여러 번 두드려본다. 그렇게 간단하게 외출 준비가 끝난다.

이렇게 간단한 데도 나는 화장이 솔직히 너무너무 귀찮다. 수업을 가거나 모임을 가기 전에는 화장을 꼭 하긴 하는데 그럴 때에도 너무 귀찮다. 기껏해야 15분 정도인 시간조차도 귀찮아하는 나의 게으름은 불치병일지도 모른다. 용감하게 맨얼굴로 갈 용기는 없고 화장은 귀찮은 우스운 딜레마에 빠져 산다. 나는 내 머리카락의 새치와 얼굴의 기미까지도 끌어안고 사랑할 아량이 못되나 보다. 그래도 게으름을 이겨낸 화장 끝엔 그나마 화사해진 얼굴이 마음에는 든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잘 못 자서 피로가 누적되고 몸이 천근만근 하던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당장 화장을 지웠는데도 눈이 건조하고 피로했다. 눈도 잘 떠지지 않고 소파에 털썩 누워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가온 하원 시간, 아이들이 집에 왔다. 자매 아니랄까 봐 두 사람의 등장으로 집안은 온통 시끌벅적하고 나는 두 여자의 쉴 새 없는 요구들에 폭격을 맞는다. 간식으로 무엇을 먹고 싶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 티브이에 무엇을 틀어달라, 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먹고 누구와 놀았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와르르 쏟아내다가 자매끼리 붙어서 별거 아닌 일로 실랑이를 하고 나는 뜯어말린다. 손을 씻겨주고 원하는 간식을 대령해 주고 적당히 대꾸해준 후, 보고 싶다는 캐릭터 친구들의 영상을 틀어주고 나서야 한 숨 돌린다. 그 틈을 타 슬쩍 소파에 기대 누워있는데 문득 인기척을 느꼈다.

큰 아이가 내 얼굴 앞에 다가와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특유의 하이 톤 음색으로 말한다.

“엄마는 정~말 예뻐요.”


깜짝 놀랐다.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아이가 날더러 예쁘단다.

그리고 가만히 내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기미와 점들이 있는 위치에서 멈춘다.

“엄마, 이건 뭐예요?”


또 깜짝 놀랐다. 엄마 얼굴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게 귀엽기도 했다.

나는 나의 콤플렉스의 이름을 딸에게 말해주었다. 이것의 이름은 기미라고.

그러자 활짝 웃으며 또 높은 음색으로 말했다.

“엄마~! 나는 기미가 너~무 좋아요! 너무 예쁘다. 엄마는 너~무 예뻐요.”

그리고 내 얼굴을 끌어안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뜬금없는 아이의 애정표현에 천근만근 했던 내 몸이 일으켜졌다. 깔깔 웃으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내 남편도 다정한 위로를 건네주는 자상한 남자지만, 이런 표현은 내 딸이 처음이다. 이 아이는 내 얼굴의 기미 잡티까지도 사랑한단다. 세상에. 나는 너무 우습고 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한참을 웃었다. 내 딸이 바라보는 나는 그렇게 예쁜 사람이었다. 감동이었다. 그렇게 내 딸은 나의 지친 몸을 일으키고, 맘에 안 드는 내 모습까지도 아름답게 보게 했다. 내 딸 눈에 내가 그렇게 예쁜 사람인데 나도 나를 사랑해줘야 하지 않을까? 용기를 내어 꽤 오랫동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 모습을 거울로 마주했다. 오늘은 조금 달라 보인다. 그리고 작은 결심을 했다. 내 딸이 좋아하는 건 나도 같이 좋아해 주기로. 내 딸이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나도 좀 더 사랑해주기로. 기미도 없고 딸들도 없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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