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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Jul 15. 2021

[디카시] 침묵

닫아둘 때가 더 많아야 잘 익는다.


뚜껑 제대로 닫힌 것이 없구나

그러면 어떤 것도 익히지 못한다


열어둘 때 열어두더라도


항아리는 언제나

잘 닫아두어라







 



글을 쓰는 사람은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으로

영감이 휘몰아칠 때 펜을 잡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끔씩 뒷목부터 올라오는 혈압에

분노가 폭발해서 쓰기도 합니다.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적고 보니

쓸 욕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던 적도 있습니다.

나 역시 상처입은 연약한 한 인간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도 있습니다.


좀 더 교양 있고 세련되게 욕하려고

좀 더 화를 절제하고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글에 담아보기 위해 잠시 묵혀두기도 합니다.

잘 익으면 꺼내 쓰고 썩은 내가 나면 버립니다.


알맞게 잘 익은 말이 적절한 때에

적재적소에 쓰이지 않으면

모든 인간 같은 인간들은 화가 납니다.

자식 잃은 부모 혹은 슬픔에 싸인 유가족들에게

“이제 그만해라.” 같은 표현을 해선 안되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을 잃은 슬픔에 적절한 유예기간이란 건 없습니다.

영원한 상실감은 예고 없이 찾아와 가슴을 할퀴고

메워질 수 없는 구멍을 내고 갑니다.


특정 단체 혹은 특정 정치인이 욕먹을 행동을 한다면

그들을 겨냥해서 욕을 하면 됩니다.

“피해자 코스프레가 역겹다.”

이토록 주어가 모호한 말을 공개 플랫폼에 게재하면,

유가족들도 그 글을 읽고 듣고,

또 한 번 상처받을 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어야 합니다.

끝없이 애통할 누군가를 사려깊게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명백히 부적절한 언행입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다 울컥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산과 교과서의 제일 앞 장에 적힌 말

“Bad things at times, do happen to good people”

“때때로 불행한 일들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이 말을 인용하여 아이를 잃은 산모에게 위로를 전하는

양석형 교수의 편지 때문이었지요.


열심히 사는 착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슬픈 일들에

깊이,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과 연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쩌면 변방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아름아름 글을 쓰고 있는 일이 제 할일일지도 모릅니다.


뚜껑을 닫아도 장독대는 숨을 쉽니다.

잘 익은 된장 , 고추장, 간장, 젓갈을

때맞춰 꺼내 담은 정갈한 밥상의 품격을 닮고 싶습니다.


머릿속에 잘 익은 지식들 만큼

가슴속 긍휼도 잘 익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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