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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Sep 05. 2021

쓸쓸한 통나무, 시인이 그 모습을 담은 이유

디카시 "인생그림(신금재)"

캐나다 카나나스키스 어퍼 레이크


인생그림 / 신금재


기꺼이 산과 하늘과 빙하를 받아들여

호수만의 독창적인 그림을 그린다

내 삶에서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

한때 푸르기만 하였던 나무들 이제는 마른 통나무로 떠가도

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말해주는 저 호수의 물소리






인생에 대해 장 폴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고.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다. 그 길 위에서 어떤 사람은 날마다 성숙해지고, 어떤 사람은 그대로다. 그 모든 것은 선택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젊고 혈기왕성한 시절,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한계를 두지 않았다. 푸르고 힘찬 꿈을 꾸고 성장과 성숙, 명예와 부, 권력과 힘을 얻기 위해 더 높은 자리로, 더 견고한 위치로 올라서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곤 했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성숙한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삶을 헛되이 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잘못은 바로잡고, 후회스러운 일은 덜 하고,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었다는 사실로 뿌듯하기 위해서였다. 술에 취하기보다 성장하는 자기 자신에 취하는 삶은 숭고하다.


인생의 길 위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할지, 어떤 학교로 진학할지, 어떤 직장으로 가야 할지, 어떤 친구와 사귀는 게 좋을지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의 조각들이 거대한 인생의 모자이크를 완성한다. 여러 가지 선택지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혜안도 필요하고 현재의 상황이 품은 잠재력도 보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나의 안목과 결정을 신뢰하는 믿음이 용기를 북돋아 준다.


우리가 선택한 푸르고 드높은 싱싱한 나무가 갑자기 쓰러져 마른 통나무로 떠내려가도 괜찮다. 우리의 잘못만은 아니다. 떠내려가는 마른 통나무처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당황스러운 일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는 일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면 자기 연민 혹은 자기혐오의 극단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변수가 작동하는 인생에서 자신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 인정해주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을 해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공일지도 모른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1시간 반 정도 서쪽으로 달리면 카나나스키스 레이크를 만날 수 있다. 피너 로히드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카나나스키스 어퍼 레이크에는 18km에 달하는 하이킹 코스가 있다. 캘거리에 거주하는 시인은 이 하이킹 코스를 따라 걸으며 아름답다는 말로는 충분히 담아지지 않는 로키 산맥의 풍경을 카메라 안에 담았다. 늦여름에도 녹지 않는 만년설 덮인 산, 만년설 녹은 물이 이룬 거대한 호수, 호수에 비친 하늘과 구름과 나무, 그리고 조용히 떠내려가는 통나무가 한 프레임 안에 있다.

 

아름답고 예쁜 모습만을 찍고자 했다면 시인은 둥둥 떠내려가는 나무가 다 지나간 후에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쓸쓸히 떠내려가는 나무도 프레임 속에 담았다. 살리려고 애를 썼지만 살릴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선택들이 떠오른다. 헛발질하고, 속아 넘어가고, 이용당했던 쓰라린 일들이 어서 떠내려가 버리길 바란 적도 많았다. 떠내려가는 나무까지도 화폭에 담아낸 시인의 시선이 많은 것을 환기시킨다.

 

이 모든 것을 한 화면에 담은 시인은 기꺼이 산과 하늘과 빙하를 받아들인 호수의 풍경이 독창적이라고 말한다. 죽음과 같은 실패, 어리숙했던 선택조차도 큰 그림 속의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 각자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생의 풍경이 다 다르듯 모든 호수는 시시각각 독창적이고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 긴 여운이 남는 시를 읽고 나니 만년설 녹은 깨끗한 물속에서 정화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생의 풍경화 속에 쓸쓸히 떠내려가는 나무 몇 개쯤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 또한 아름답고 독창적인 한 폭의 그림일 테니 말이다.



디카시로 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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