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부탁해
-양윤미
늦은 밤, 빈칸 속에는
미처 널지 못한 빨래들이 있다
베란다 바닥에 흥건한 검은 얼룩을 밟고
세탁기 뚜껑을 열면
뒤엉킨 빨래들이 벽에 달라붙었다
무거운 옷가지를 끌어안고
허리를 숙여 동그란 창을 연다
마르지 않은 이야기들을 집어넣으면
찌그러진 무지개가 굴러 떨어지고
가벼워지는 시간엔
읽히지 않은 구겨진 책들을 편다
배운 적 없는 말들이 보송하다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 학이사, 2023.
- 계간지『시마』2023 봄, 제 15호 수록
감상 -
'배운 적 없는 말들이 보송하다'와 같은 표현을 듣고 만진다는 건 행운이다.
권상진 시인의 시 "고수"의 마지막 구절 '나는 조목 조목 아프다'와 같은 표현이
뼈마디 구석구석을 찌르는 통증적 쾌감을 주었다면, 양 시인의 표현에서 나는 시인의 풍성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예의 엿본다.
쉽지만 얼마나 좋은 표현들인가!
저것이 바로 시적 언어다.
(신휘 시인)
-2023. 계간 시마, 봄호 수록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