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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기 위해선 어딘가에 발을 디뎌야 해요

9월의 시요일에 깃들다

by 양윤미

올해가 시작되고 처음 의뢰 받았던 일은 뮤지컬 대본 각색이었다.

오랜 회의를 거쳤고, 나는 감독의 의도를 반영하고자 새로운 등장인물과 플롯을 추가했다.

오전시간 내내 흰 종이와 까만 글자들과 눈싸움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1시여서, 황급히 점심을 먹고 영어 학원으로 출근하기 일쑤였다.

머리를 쥐어 뜯은 날도 있었고, 아무 진전 없이 답답하기만 했던 날도 있었다. 길고 긴 “정지의 시간” 끝에 겨우 이야기의 흐름을 찾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나의 첫 각색본은 호평을 받았다. 퍽 뿌듯했다. 그러나 두 번째 각색본부터 대본에 대한 의견차이가 커졌다. 많은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 과정에서 얼굴을 붉힌 순간도 있었다. 같은 한국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다를 때에는 오해의 여지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표현방식의 다름에 대하여 조율하고, 또 조율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겨우 일말의 진심에 가 닿을 수 있었다.


비록 제한된 예산과 상황 때문에 삭제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쨋든 우린 서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작품을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이끌어 갈 수 있을까.‘에 방점을 찍었기에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9월은 뮤지컬 공연이 막을 올린 달이었고, 감동적으로 마지막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뜻깊은 달이었다.


글을 쓰긴 써야 하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탄생하지 않아 답답했던 “정지의 시간”은 실제로, 온 힘을 다해 움트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아무것도 못하던 시간”은 사실, 함께 무엇을 하면 좋을 지 발견해 내는 시간이었다.


여러가지로 감명깊은 9월을 보내며, 9월의 시요일을 위해 내가 준비한 시는 백무산 시인의 “정지의 힘”, 그리고 김선우 시인의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고?”였다.


정지의 힘을 읽은 회원분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떠올라 뭉클해졌다고 하셨다. 또 다른 분은 현재 자신의 삶이 정지하고 있는 시점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눠 주셨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움트고 있는 것 아닐까.


함께 밥을 먹고, 시를 읽고, 또 예쁜 한옥 까페에 들러 여름 한정 메뉴 말차빙수를 나눠 먹으며 울고 웃는 이 순간이 참 기쁘고 감사했다.

감사한 기분과 애정어린 마음이 넘쳐나, 가슴 한 구석이 몽글몽글해지는 초가을 밤이었다.


‘우린 모두 새처럼 자유롭고 싶어서 땅에 발을 디디고, 서로가 서로에게 깃들어 있구나. 그런 거구나.’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고?


김선우


멀리 갔다 돌아오는 새들


날개 끝에서 흩어지는 불꽃들


어딘가 도착하기 위해선

바람을 탄 채 바람에 저항하며

스스로 방향을 만들어야 하는 것


그보다 묵직한 장엄은--


날기 위해선 어딘가에 발 디뎌야 한다는 것

생명은 몸 닿을 곳이 필요하다는 것

‘새처럼'이 아니라 '새조차도'라는 것

날개는 발 다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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