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안 보내길 잘했어.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여자의 직감을 항상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이 나를 사로잡았다. 남편은 무던한 성격답게 허허 웃어넘겼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쉽게 둘째가 찾아올 리 만무하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우리의 자녀계획에는 둘째도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첫째처럼 천천히 찾아올 거라고만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를 기관에 맡겨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생기지 않는 이상 아이를 집에서 돌보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만약 아이가 본인의 의사로 기관에 다니고 싶어 한다면 그 마음 또한 존중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 결심이 지켜지지 않을 것만 같은 아무 근거 없는 예감이 들고 있었다. 한 달 후, 우리는 임신 테스트기에 뜬 두 줄을 마주했다. 첫째는 겨우 생후 9개월이었다.
너무 빨리 찾아온 아이의 존재에 우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분간되지 않는 표정을 하고 기가 차서 웃었다. 현실적인 문제에 빠르게 반응하는 타입인 나는 곧바로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우리의 결정에도 수정이 필요했다. 나이 드신 시부모님께 몇 주 내내 아이를 부탁드릴 수도 없는 일이고, 설사 시부모님께서 몇 주를 버텨 주신다 한들 그 이후도 문제였다. 연년생을 낳은 후 변화할 몸의 상태도 걱정스러웠고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는 어린아이 둘을 홀로 매일매일 돌보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산부인과를 다녀온 후 출산 예정일이 6월이란 사실에 안도했다. 3월부터 6월까지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도록 힘을 쏟기로 했다.
집에서 도보로 몇 분이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곳에 공공형 어린이집이 있었다. 거리도 장점이었고 공공형이란 것도 맘에 들었다. 우리 아이는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가정 어린이집에 입소 확정이 되었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 어느새 2월이 되었다. 2월은 대부분의 어린이집에서 아이 부모님들을 모시고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달이다. 오티 날짜가 궁금해서 연락을 드려볼까 하던 차에 원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잠시 시간 되시면 방문해주실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어린이집을 찾아간 나에게 원장님은 큰 애가 2월생이라 그런지 발달도 빠르고 똘똘해 보인다며 칭찬에 칭찬을 거듭하셨다. 그리고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한 아이가 멀리 이사를 가게 됐고 나머지 한 명은 갑자기 크게 아파서 입원 중이라 언제 퇴원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사정을 설명하셨다. 게다가 대기하고 있는 인원도 없기 때문에 반을 아예 없애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었다.
“네? 반을 없애요? 그러면 우리 애는 어떡해요?”
원장님은 우리 아이가 똑똑하고 발달도 빠르니 한 살 많은 언니 오빠들과 같이 합반을 해도 되지 않겠냐고 물으셨다. 그 뒤에 덧붙인 말들은 안 하면 더 좋았을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어린이집 교사들 급여도 맞춰줘야 된다느니, 지나고 보면 그렇게 큰일도 아니라느니 별의별 설득이 이어졌다. 그녀는 미안한 얼굴로 죄송하다고 말하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 나 한 사람만 양보해주고 맞춰주면 어린이집 운영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로 들렸다. 어린이집을 경영해야 하는 원장 입장에서 우리 아이는 희생양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은 너무 죄송해서 다른 어린이집 자리도 알아봐 두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천해 준 곳은 엄마들 사이에 소문이 좋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거절한 후 일어섰다.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이유로 나이가 안 맞는 반에 억지로 입소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시작부터 내 아이를 뒤쳐질 수밖에 없는 반으로 욱여넣으라니,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었다.
2월, 어린이집에 남아있는 자리가 별로 없을 시기였다. 나는 그토록 줄을 서서 대기했던 공공형 어린이집에서 까이고 집에 돌아와 애써 웃으며 아이에게 간식을 먹였다.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어리광을 부렸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두 아이 모두 내 손으로 잘 키우겠노라고 결심해야 할까?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다시 또 입원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만든 사회적 안전망이 바로 어린이집 아닌가? 근데 지금 알아본다고 한들 남아있는 자리가 있을까?
이런 사정을 아는 지인들 중 한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동네 어린이집 중에 괜찮은 곳이 있는데 혹시 모르니 연락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소개받은 어린이집을 검색해서 대기를 걸었더니 2번으로 떴다. 어린이집도 방문해 볼 겸 남편과 함께 원장님을 만나러 갔다. 원장님은 대기 1번인 분이 고민 중이고 기존 원생 한 명도 변동 가능성이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하셨다. 어떻게 될 거라고 확답을 드릴 순 없지만 잘 될 것 같으니 한 번 기다려 보자고 말씀하셨다. 원장님의 긍정적인 말에 약간의 희망이 생기자 갑자기 울컥해졌다. 나는 그 날 처음 보는 원장님 앞에서 이 어린이집에 꼭 입소하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 이제 더 이상 알아볼 데도 없어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원장님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말없이 휴지를 건네셨다. 그렇게 못난 꼴을 보이고 일주일쯤 지난 후, 감사하게도 내 휴대폰에는 입소 확정 문자가 날아왔다.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학교든, 자식과 관련된 선택을 내릴 때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부모의 선택으로 아이가 만나게 될 사람들과 아이가 만들어갈 미래가 바뀔 수도 있기에 이런 일을 결정할 때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가 심사숙고해서 선택한 답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나의 선택이 오답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오만해지기만 할 뿐이다. 오만하기보다 겸허할 수 있어야 수많은 선택의 기로 위에서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 그래서 최선의 선택이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질 일들까지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있다. 내가 연년생 엄마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처럼, 입소 확정된 딸아이의 반이 통째로 사라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처럼 인생에 변수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좀 더 마음을 비우고 힘을 빼기로 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에 초연해지는 것. 이 불가능한 일을 배워나가기로 결심했다. 삶은 언제나 짠내가 나면서도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