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했어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 지 내가 아니까.

by 양윤미


“이게 다 큰 딸이 처신을 잘못해서 그래!”


늦은 밤, 술에 거나하게 취해 퇴근한 아빠는 자고 있던 나를 깨워 술주정을 했다.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는 안방 문을 닫고 술에 취한 아빠를 외면했다. 나는 어른인 엄마 대신 아빠의 하소연과 신세한탄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이었던 아빠 때문에 나는 싫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의 신세한탄을 억지로 듣고 있어야 했다. 아직 어린 10대 아이였던 나는 슬프게도 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점점 가스 라이팅 당했다. 나는 정말로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혼이 나는 거라고 은연중에 믿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끊임없는 원망을 들으며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가 자책했다.



나의 아빠는 자기밖에 모르는 나르시시스트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의 말을 거스르거나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집안에서 눈치를 살피며 다녔다.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나를 탓하던 아빠로 인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비난하는 나쁜 습관을 익혔다. 한 번은 아빠가 나에게 결혼하고 애 낳아 키워보면 아빠가 얼마나 힘든지 알 거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가스 라이팅 당하던 나는 내가 정말로 나쁜 딸인 줄만 알았다. 아빠 집에 얹혀사는 주제에 생활비 한 푼 안 보태느냐는 말에 김밥집에서 일해서 벌었던 아르바이트비를 갖다 바쳤다. 한 번 그렇게 주고 나니 다음에는 쥐꼬리 만한 대학생의 과외비를 탐냈고, 고작 월 10만 원씩 넣고 있던 나의 적금이 얼마나 모였는지 물었다. 아빠가 생활고로 힘들 수밖에 없는 직업이었다면 백번 양보해서 이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에서 상여금이며 보너스며 따박따박 잘 받는 직장을 가지고 있었던 아빠는 정말로 돈이 없었을까. 나는 아빠도 변할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으며 정말로 오랜 시간을 버텼다. 그 일말의 희망조차 다 떨쳐버리던 어느 날,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 지체 없이 아빠 곁을 떠났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나는 친구와 함께 놀러 갔던 교회에서 저 노래를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가 정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저 노래 한 마디를 듣고 주책맞게 엉엉 울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내가 간절히 듣고 싶었던 축복의 한 마디를 들은 이 날은 내 마음을 회복하기 시작한 첫날이었던 것 같다.


회복은 단기간에 급속도로 일어나진 않았다.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를 비난하던 좋지 않은 습관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정말로 나의 부족함 때문에 생긴 일인지 나의 어떠함과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인지를 구별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자아 성찰이란 명목 하에 나를 향한 비난의 화살을 쏠 때면 고맙게도 남편이 중심을 잡아 주었다. 나 자신을 괴롭게 하는 습관은 아마 나와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완벽한 인간도, 완벽한 인생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인데 나는 아무 문제없는 완벽한 삶을 살겠다는 헛된 꿈을 꿨다. 완벽한 삶을 살기 위해선 나와한 배를 탄 남편과 아이들도 완벽해져야 했다. 그 누구도 트집 잡을 수 없고 그 어떤 사람도 내 탓을 하지 못하도록 완전무결한 삶을 살려고 애를 썼다. 이루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삶은 지독하게 고통스러웠다. 완벽한 이상향을 이루려고 하면 할수록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미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으려 잠 못 이루던 숱한 밤들,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내가 더 잘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 거라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날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거쳐 드디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불안’을 깨닫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자리한 뿌리 깊은 불안은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불안에 손과 발이 묶인 채 끌려 다니는 마리오네트 인형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물질적 한계, 재능의 한계, 내 성격과 성향이 가진 한계, 내 원가정의 아픈 상처로 인해 생긴 마음속 쓴 뿌리 같은 것들을 모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들로 인해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남편과 자녀들까지도 상처를 입게 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내 결혼은 내 부모의 결혼생활과 달라야 했고, 나의 육아 또한 그들보다 반드시 더 나아야 했고, 나의 못난 모습을 죄다 뜯어고쳐서라도 자식들에게 멋진 본이 돼주고 싶었다. 그러나 애를 쓰면 쓸수록 내 몸은 더 꽁꽁 묶여갔다. 내 손과 발을 꽉 묶고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불안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나를 옥죄고 있던 실의 끝자락에는 “나는 문제 투성이야. 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라는 잘못된 메시지가 존재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에게>라는 책을 쓴 독일 심리학자 안드레아스 크누프는 삶의 여백은 여백으로 그대로 두라고 말했다.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대부분의 문제들은 애를 써서 메꿔야 할 삶의 공백이 아니라 그대로 두어도 되는 삶의 여백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어쩌면 그대로 두어도 될 여백과 채워야 하는 공백을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나의 한계들은 바꿔야 할 것이라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으며 충분히 지혜롭고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한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애써야 했던 일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로하는 일이었다.



낯가림이 심했던 첫째가 내 품에만 쏙 안겨 있던 시절이 있었다. 내 탓이 아닌 일에 나를 탓해온 오랜 습관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 나를 질책했다. 사회성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휩싸여 검색창을 떠나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내 친구는 대나무에 매달린 판다처럼 나에게 꼭 붙어 있는 아이를 보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가 너무 좋은가 보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서 그런 거야. 다른 누구보다도 엄마가 가장 자기 마음 알아주고 제일 잘해주니까.”


친구 눈에 나는 아이를 가장 예뻐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잘 헤아려 주는 좋은 엄마였다. 그 날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을 건네준 친구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베풀 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당당히 맞서기로 결심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나 스스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내 안에서 사랑이 가득 차 흘러넘치도록 나는 더욱더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니 사랑받지 못했어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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