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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Jan 26. 2021

어느날 문득 시를 쓰기 시작했다.

테드 휴즈 <오늘부터, 시작詩作>

글을 쓰고 책읽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내 주변에도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서교육기업을 몇년째 운영하고 계시는 홍대표님도 그 중 하나이다. 재치있는 입담과 백종원이 울고갈 만한 요리실력을 자랑하는 그 분은 외모는 산적같으나 고급스런 문구류를 모으는 아기자기한 취미의 소유자다. 어쩌다 그 분이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소중히 읽고 있는 책을 어깨너머로 보게 되었다.

<오늘부터, 시작(詩作)>


제목부터 마음을 쿵 때린 탓에 나는 인터넷 창을 열고 검색에 들어갔다. 1967년에 출간된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책으로 한 때 중고 서점에서는 웃돈을 주고 거래가 성사될 정도로 고가의 값어치를 자랑하는 책이었다. 테드 휴즈는 <더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라는데 나는 202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국의 유명한 계간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대표님이 보고 있던 전자책은 2019년 비아북 출판사에서 해적판의 오역을 바로잡고 내용을 가다듬어 새롭게 선보인 개정판이었다. 한국 현대시의 ‘지금’을 대표하는 젊은 시인, 김승일이 번역을 맡았다는 점이 책을 더욱 매력있게 만들었다.


대학시절 영미문학 시 수업을 들을 때  작자미상의 영웅 서사시 “베어울프”때문에 머리를 쥐어뜯던 기억이 난다. 영문학에서 큰 권위를 가지는 T.S.엘리엇의 글을 그토록 코피터지게 공부했었는데 그의 작품 역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오래도록 회자되는 영문학과의 농담 때문인 것 같다. “우린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를 왔어!”


“전공으로 배울 땐 그리도 싫었는데 문학은 역시 교양으로 해야되나 봅니다.”하는 대표님의 말에 웃음이 났다. 뭐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가슴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법이다. 서른 후반이 되어 글과 사랑에 빠진 나는 나를 설레게하는 책을 만나 마우스를 광클릭해대며 책을 주문했다. 이미 책을 읽은 사람들이 적은 몇 개의 리뷰를 읽으며 신나서 날뛰는 마음을 붙잡고 기다려본다.


책 속의 문장 중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쓸 수 없다.”는 말이 가장 큰 울림을 준다. 이 말은 비단 시 뿐만 아니라 수필과 소설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그 어떤 감흥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글쓰기는 얼마나 고역인가. 반면, 가슴을 뛰게하는 것에 대해 적으려면 할 말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글을 쓰는 과정을 되짚어보면 더욱 실감나게 동의할 수 있다. 삶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그 마음을 따라 진솔하게 적어내는 것, 그런 것이 글이었다. 물론 쏟아져나온 날것의 문장들은 반드시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어쨋든 글의 시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모두가 다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로부터 출발한다.


“어느날 문득 시를 쓰기 시작했다.”라는 테드 휴즈의 말이 인상깊다. 나를 비롯하여 어느날 문득 시를 쓰기 시작한 많은 일상의 시인들에게 이 책은 나아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이자 “시인학개론”이 될 것이다.


어서 책이 도착했으면 좋겠다.





훌륭한 시인들의 작품은
그들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겪었던,
혹은 그들 고유의 성격 때문에 반복해서 일어나는,
인상적이거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경험이 더 넓을수록,
그러니까 평범한 일상에서 나온 것일수록
시인은 실로 위대해집니다.   
(54p)


글쓰기 수업이 체육 수업은 아니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작고 단순한 대상에 집중하는 연습은
가장 주요한 정신 운동이다.
어떤 물체라도 괜찮다.
1회 5분이면 충분하고, 첫 연습은 1분으로 한다.
연습을 반복하면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이다.
(121p)


강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순간순간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들리지 않는 음악,
강물에 떨어지는 눈송이의 영혼,
이중성과 상대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덧없음,
절대적으로 중요하면서도 완전히 무의미한 것...
언어가 이런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때,
그 순간을 잡아낼 때,
원자나 기하학 도형이나 렌즈가 아니라
인간의 호흡과 체온과 심장 박동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을,
우리는 시 詩 라고 부릅니다.
(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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