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생업의 직업화

by 글한송이

저는 IT 기획자로 일하고 있어요. 훗날 세계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진 기획자라니, 선배님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으실 거 같아요. 동료가 하루는 제게 그러더라고요. 나중에 이 업계에 계속 안 있을 거 같아 보인다고 말이죠. 딱히 반박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저한테 기획자라는 직업은 잘 맞고, 즐기면서 할 수 있지만 평생을 바칠 만큼 의미가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자기 직업에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가장 먼저 느껴졌어요. 나는 언제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싶은 걸까. 자칫 남들을 질투하고 미워하게 될 수도 있었어요. 여유로운 가정에서 태어나 타고난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키워낸 거라고 억지스러운 추측을 하는 데 시간을 쏟으려고 한 거죠. 루저가 될 뻔한 거죠. 그때 1년 선배가 한 말이 꽤 크게 와닿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이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딱히 상관없지 않습니까? 인간은 결국 꽃을 피우고 죽을 텐데, 그 꽃을 피우기 위한 영양분이라고 생각하면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겁니다."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제겐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 시간조차도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처음이었지요. 놀랍게도 그때부터 제 일이 딱 맞는 옷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계속되는 야근에도 웃으면서 버틸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른 거예요. 맡은 업무를 모두 마치고 나면 뿌듯한 미소가 흘러나왔고, 다시 바빠져서 정신이 없을 때도 화장실을 다녀오는 짧은 시간에 으쌰 으쌰 힘을 내서 다시 자리에 앉는 스스로가 멋있어 보였거든요. 점점 제가 쏟고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됐죠.


이제는 기획자로서 전문성을 기르고 싶다는 욕심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떠올려보고, 요즘 트렌드를 쫓아가진 못해도 뒤쳐지진 않으려 노력합니다. 선배처럼 기획자가 되기 위해 몰입할 수 있는 타고난 기획 근성(?)은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즐길 줄 아는 것부터 시작하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오를 때도 있죠. 물론 글을 쓰겠다는 꿈은 가슴 깊숙한 곳에 품고 있어요. 하지만 당분간 글쓰기는 취미로 두려고 해요. 생업이 직업으로 변화한 이 순간에 제대로 취해보려고요. 그러면 훗날 저처럼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한 마디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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