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무언가에 홀린 듯 살았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머리를 강제로라도 잠재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또 다른 방법에는 계획대로만 시간을 보내는 게 있었는데,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규칙대로, 정해놓은 대로, 스스로를 통제해야만 정신이 덜 피곤했기 때문에 몸을 괴롭히는 중이었다. 습관처럼 큰 서점을 찾았다. 소득 없는 방문으로 시간을 버렸다는 후회가 생기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방황했다. 결국 찾은 건 책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인연 같은 사람이었어요."
차라리 거절을 하지 왜 따라 나와서는 한 마디도 못 붙이게 하는가 눈치를 살피던 옆집 청년에게 불쑥 그 사람 이야기를 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게 바로 TMI니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떠들었다. 듣기 싫으면 자기가 먼저 일어나겠지, 하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그치만 우연이었어요. 그냥 잠깐 서로의 하루에 끼어든."
서점에서 만난 그와 나는 몇 년간 늘 함께였다. 대학생이었던 나와 대학원생이었던 그는 같은 학생이라는 신분 속에서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함 없이 서로를 챙겼다. 아주 잠깐의 틈이어도 당연히 같이 있었다. 마치 10분 쉬는 시간 동안 매점도 다녀오고 수다도 떨고 졸기도 했던 고등학생 때처럼.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 자연히 멀어졌지만.
"각자 생활에 충실한 사람들이었거든요. 어쩌면 저 혼자만이었을 수도 있고요. 옆에 있어도, 외롭게 만들었을 거예요, 내가."
내가 그와 같은 대학원생을 보내고, 사회인이 되었을 무렵 그가 다시 찾아왔다. 얼마 남지 않은 자기 인생을 들고서.
나는 건강하지 못하다. 반려 동물이고 식물이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단순히 아파서는 아니겠다. 몸살로 열이 펄펄 끓으면서도 자식을 위해 밥을 안치는 엄마를 생각하면, 난 그저 못되고 이기적인 애인 거다. 몸이 안 좋아선지 머리라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조차도 감당을 못한다. 열심히만 돌아가지 잘 돌아가는 건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통제 가능한 게 좋다. 그래야 걱정거리를 하나라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방문은 내 사고를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들었고, 괴로웠다.
"다시 돌아왔을 때도 매몰차게 밀어냈어요. 마지막이어서 찾아왔던 거뿐인데."
"어떤 게 가장 후회돼요?"
"네?"
"지금 하는 말들, 전부 후회로 꽉 차있는 거 같거든요."
너무 많아서 입을 떼기 어려웠다. 마지막엔 그냥 한 번 안아주고 돌려보낼 걸, 좋은 추억 속에 함께 해서 즐거웠다고 말해둘 걸, 서점에서 치근대줘서 고마웠다고 인사할 걸, 애초에 서점을 가지 말 걸.
그니까 왜 죽어. 그런 말을 왜 해. 나한테 알려서 뭐 하게. 죄책감 속에 살라고? 내가 그렇게 미웠을까?
나쁜 놈. 나도 너 미워.
얼굴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도 아니면서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다.
나중에 쪽팔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울음이 터지는 건지 내가 참 한심하다.
아무래도 여긴 사람을 찌질하게 만드는 곳인 게 분명해.
"그 사람도 여길 방문 했더라면, 뭔가를 했겠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서 짭짤한 눈물을 코와 입으로 먹어가며 옆집 청년을 쳐다봤다.
"편지 써봐요. 서점 친구를 위해서. 할 말도 많아 보이는데. 이렇게- 커피 한 잔 하면서요."
김이 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꿀꺽 삼키는 모습은 퍽 여유로웠다. 동시에 어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다가 여기서 나와 마주치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