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였던 주변인들은 내가 너무 강하게 키워졌다고 말했다. 강한 멘탈이 부럽다고, 동시에 불쌍하다고. 조금 더 친밀한 관계였던 지인들은 나를 무거운 책임감 속에 성장해 독립성이 강하다고 평했다. 주도적인 성격을 닮고 싶다고, 그러면서도 안타깝다고.
그 시절 나는, 멘탈이 강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주도적이지도 않았다. 상사에게 핀잔을 들었을 때 '뭐래.' 하고 묵묵히 내 일을 한 적이 있었던가. 나이가 서른이 다 되도록 자취 생각이나 했었던가. 그저 물처럼 흐르는 대로 인생을 흘려보낼 뿐이었다.
내가 날 모르는 건지, 남이 날 모르는 건지 헷갈리던 나날들.
죽고 나면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하다.
이렇게 계속 모르면, 그냥 나는 멍청이 아닐까.
하지만 오늘은 모르기 때문에 좋았다.
아는 것은 힘이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서.
당분간은 약이 더 유용할 거 같다.
울다가 기절할 정도면 나약함의 끝판왕이지 싶은데, 이상하리만치 개운하다. 심지어 마음이 한결 가볍다.
동생이 부모님을 지켜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샘솟았다. 멍청이 중에서도 똥멍청이가 다름없지.
똑똑똑-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함을 깨뜨리는 문 밖 소음이 나를 깨우기 전까지, 평온함 속에서 헤엄쳤다.
"옆집입니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면 절대 문 열어주지 말고 아무도 없는 척하라고 했는데.
무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나와는 대조되게, 옆집 청년은 해맑게 웃었다.
"오! 살아있었네요! 저는 또 한동안 인기척도 없고 해서-"
"무슨 일이에요?"
"인기척이 없어서 혹시 잘못된 건가 걱정이 되가지고-"
"용건 없단 얘기죠?"
"아, 커피 한 잔 할래요?"
뭔가를 가득 든 손이 눈앞에 나타났다. 걱정했다는 사람에 고맙다거나, 기필코 커피를 같이 마시겠다는 준비성에 감탄했다거나, 뭐, 그런 것 때문에 응한 건 아니다.
'커피 한 잔 할래요?'
그저, 묻어뒀던 기억에 머무르던 누군가가 스치듯 떠올라서. 거슬려서. 홀린 듯 따라나섰다.
얼굴조차 지워버린 그이가 마치 나를 부르는 듯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