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다. 나로 인해 눈물과 땀으로 헤엄치는 가족을 떠나 나만 빼고 모두가 평온한 이 마을에 다시 왔다.
내 몸이 아직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과 두통의 괴로움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한시름 덜었기를 바란다.
스스로를 저주한 글이 이렇게까지 파급력이 클 줄은 몰랐다. 다른 사람들까지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만드는 마을의 잔혹함에 혀를 내둘렀다.
남한테 피해 끼치지 말고 살자는 신조를 알고서 이런 술수를 쓴 거라면, 이 마을 관리자는 성공했다. 나 하나 아픈 건 괜찮다. 나 때문에 누군가의 일상에 점이라도 하나 찍히는 것보단, 그게 낫다. 그러니까, 나는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됐다.
멈춰버린 내 심장과 차갑게 식어가는 잘난 거 없는 몸뚱이를 보고 있을 가족들을 위해서, 펜을 들었다.
“송진이에게.”
내 동생 송진이에게 쓸 편지.
생일 때 손바닥보다 조그마한 카드에 ‘생일 축하 한다.’라고 무미건조하게 썼던 그 편지가 전부였는데. 내가 동생에게 따스함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낯간지러워서, 할 말도 없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만은 알지 않느냐는 핑계로 언젠가부터 선물만 휙 내밀고 말았던 기억이 숨을 내쉴 때마다 떠올랐다.
난 동생에게 이유가 있어야만 말을 걸었던 무뚝뚝한 언니였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못 쓸 거 같았다. 그래도 써 내려갔다. 엄마, 아빠를 잘 살펴주기를 바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 결국엔 또, 이유가 있어서.
송진이에게.
안녕,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평소였다면, 네가 내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 일이고, 나 역시 당연히 고마워하고 있음을 알 거라 믿고, 무심히 지나쳤겠지.
언니이기 때문에 지고 있는 무게를 네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네 외로움을 너무도 기나긴 시간 동안 감싸 안아주지 않았어.
미안해. 고맙고, 미안하다.
우리 어렸을 땐 참 친했어. 1년도 차이 나지 않게 태어나 친구보다 더 가깝게 모든 생활을 같이 했지.
내가 조금만 더 언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끔 마음이 시큰할 정도로 못난 짓도 많이 했었어.
용돈을 모아 시장에 선 꼬마 바이킹을 나 혼자 탔던 날이 여전히 떠오른다. 부러움에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널 내려다보면서, 나는 조금도 안 즐거웠어.
처음으로 죄책감이 뭔지 알았던 날일 거야. 그때부터 나는 네가 미웠어. 내 나이답게 살 수 없게 만드는 존재가 너인 거 같았거든.
미움은 결국 나를 갉아먹었어. 알고 있었으니까, 너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걸.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도, 연애를 해도, 늘 네가 눈에 아른거렸어. 항상 널 떠올렸고, 네가 날 원하면, 기꺼이 시간을 비웠지.
그렇게 해서라도 어린 시절의 빚을 갚고 싶었으니까.
같이 해외로 여행 다니고,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좋은 추억을 쌓았던 게, 내 삶에서 가장 잘 한 일일 거야.
잠깐 스쳐가는 한국의 봄처럼, 고작 한 송이밖에 안 되는 기억 꽃을 피워냈지.
그거 말고는, 내가 너한테 잘한 게 아무것도 없다.
언제나 네게 언니로서, 어른으로서 모자란 게 많은 사람이었어. 그래서 오늘도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하려고 해.
남들 다 있는 손목에 힘이 없어서 물 뚜껑 하나 못 따는 나라서, 항상 내 모든 물건의 뚜껑을 열어놓았던, 천사였던 송진아.
너는 부모님 곁에 오래 남아 있어 줘.
엄마의 광대가 땅으로 푹 꺼지지 않게 재롱도 떨고, 아빠의 어깨가 내가 있는 이곳 하늘까지 치솟을 수 있도록 당당하고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내줘.
나는 이름답게, 미약한 봄의 꽃 한 송이 정도밖에 안 되어, 이렇게 일찍 꺾이고 말았지만, 너는 견뎌내야 해.
우렁찬 여름의 푸르른 소나무처럼 부모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렴.
나중에 내가 다 갚을게.
7살 어린아이가 네게 주고 말았던 상처도, 컸으니까 다 알아서 할 거라는 믿음 속 무책임함도, 지금 이렇게 간곡하게 비는 부탁도, 다 갚을게.
챙길 사람이 셋에서 둘로 줄었으니까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을 거야.
너는 늘 나보다 뛰어났고, 진취적이었고, 멋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기어코 해내고 말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도, 나는 너를 믿을게.
엄마랑 아빠를 지켜줘.
고작 나 때문에 아프지 않게 도와줘.
고맙다.
사랑해, 내 하나뿐인 동생, 송진아.
늘 부족한 네 언니, 송이가.
울음이 쏟아졌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펜을 툭 떨어뜨렸고, 나도 의자에서 털썩 넘어졌다.
일어날 기운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차디 찬 바닥에 누워 그저 눈물과 같이 흘렀다.
탈수로 기절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