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써야 진심이 느껴진다고 할까. 대체 그 진심은 어떻게 전하면 되는 건데. 머리를 쥐어뜯어봤자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이 날리 없지. 글을 안 쓴 지 몇 년이 다 됐는데 어떻게 써. 이게 내 이승 직업이라니, 아니다. 나는 어엿한 사노예로 직장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평일에는 좀비처럼, 주말에는 히키코모리처럼 집에서 지냈다. 문득 떠오르는 글감은 있었다. 하지만 쓰지 않았다. 메모할 가치도 못 느꼈다. 나는 나에게 갇혀 살면서, 남에게 커다란 세상을 보여준다는 게 위선자 같다고 느껴진 순간부터 펜을 들 때마다 자괴감에 빠졌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졌다. 그런데 작가라니, 글을 쓰라니, 그것도 내가 만나온 사람들을 위해서? 또다시 몇 날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천둥과 번개 소리를 자주 들었고, 괴로웠다. 내가 저승으로 갈 때도 저딴 소음이 배웅할 거란 데까지 상상력이 펼쳐지자 끔찍했다. 그래서 다시 앉았다. 펜을 쥐려면 통증이 심한 팔 근육이 세심하게 움직여야 했지만, 고통을 감내해서라도 돌아가야겠다.
뭘 쓰지, 어떻게 써야 하지, 장르는 뭐가 나을까. 내 인생 빌런들은 악역으로 만들어서 모조리 죽이고 싶은데. 그러면 호러가 되나? 사랑한 사람들이 다쳐야 극적인 효과가 나타나잖아. 아냐, 그러면 로맨틱 코미디로 가자. 그러면 상처 줄 필요가 없…근데 내가 그런 감성이 있었던가. 로맨스가 부족하다고 출판사한테 문전박대당했던 거 기억 안 나? 하, 그럼 뭐야. 또 추리극이야? 이제 나도 좀 밝은 거 쓰고 싶어.
한참 고민했다. 소설은 상상력도 많이 필요했고, 탈고 후에도 여러 번 뒤집어야 했기에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내가 내 기한을 알 거라던 안내문의 말이 잊히지 않았다. 정말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쉽고 간단하게, 빠르게 써야 했다.
"젠장"
글은 늘 쓰기 어려웠다. 몇 시간은 물론이고, 며칠을 꼬박 의자에 앉아 있어도 머리랑 엉덩이만 아팠지 손은 멀쩡했다. 그러니까 등장인물이나 장르 따위를 신경 쓸 게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나는 글을 쓸 수 없었다. 한심함이 혈관을 채워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평소에는 잘 뛰지도 않던 심장이 어찌나 펌프질을 해대던지, 몇 초도 되지 않아 부끄러움에 눈물이 퍽 흘렀다.
"한송이, 너는 대체 왜 죽어서도 이 모양인 거니. 그냥 죽어라, 죽어."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집안을 휘감았고, 나를 향한 온갖 저주의 말들을 종이에 휘몰아 썼다. 그냥 죽어라, 쓸모없는 인간의 최후로 나를 전시하면 모두의 반면교사 귀감이 되겠다 등등 감히 남에게는 쏠 수 없는 말의 화살을 내게 퍼부었다. 그렇게 울다 지쳐 잠들었다.
"송이야!"
눈이 번뜩 뜨였다. 주변이 어수선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왔고, 모두의 심장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낯설지 않은 공기 냄새가 이상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 약품과 환자들로 가득한 아픈 냄새. 병원이었다. 울고 있는 이들은 내 가족이었고, 땀을 흘리며 전기 충격을 가하고 있는 사람은 내 담당의사였다.
"윽"
전기가 가해질 때마다 내가 아팠다. 누워있는 내 몸뚱아리는 멀쩡해 보였는데, 영혼인 나는 무진장 고통스러웠다. 이건가, 하늘에서 준 미션을 완료하지 못하면 나는 이렇게 아픈 걸 오롯이 느끼면서 생을 마감하는 건가. 참 잔인했다. 무엇보다 끔찍한 건, 히어로 영화에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전기 도마뱀이 될 것 같은 통증이 아니었다. 그저 덜컹이면서 삐-소리를 내고 숨 죽이고 있는 나를 보며 혼절할 듯 울고 있는 동생,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는 엄마, 차마 보지도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는 아빠를 이렇게 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 개 같은 세상"
나한테 쓴 저주도 글로 생각했나 보다. 진심을 다해 나를 욕한 거였지만, 그들에겐 진심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죽어도 마땅하다고 써서 진짜 죽이려나 보다. 안 되겠다. 살아야겠다. 적어도 가족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을 수는 없다.
"쓸게요, 글. 나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편지 쓸게요.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SOUL 마을의 내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