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내 방엔 뼈를 에는 차디 찬 겨울바람이 휘몰아쳤다. 마음도 시린데, 몸까지 추워야 한다니. 자기 기분에 따라 날씨가 정해진다는 게 얼마나 저주 같은 일인지 깨달았다. 한때는 천둥 번개를 내릴 수 있는 도깨비를 부러워했었는데. 옆집 청년이 많다며 담요 하나를 주고 갔다. 망토처럼 어깨에 두르고 책상 앞에 앉았다. 입술은 가뭄으로 갈라진 땅 같았다. 맨날 물을 달고 살았는데, 이상하게 목은 마르지 않았다. 먹은 것도 없는데 배도 안 고팠다. 모든 욕구가 사라졌다. 그저,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밖에서 안내 방송 비슷한 게 흘러나왔다. 환영이라니, 그런 게 필요해 보이는 건가.
“새로 오신 이웃 분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십시오.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할 때니까요. 신규 입주자들은 우체통에 넣은 안내문을 읽어보시고, 향후 거취가 결정될 때까지 안락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안내문 따위 신경 안 썼다. 읽는다고 해서 내 생활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테니까. 안락한 생활? 그런 게 될 리가 없다. 내 육신은 이승에서 버티고 있는데, 영혼이 여기서 정들어버리면 안 되니까. 엄마 품으로 돌아가서 살아낼 거다. 죽고 싶었던 그때를 이겨내서 살고 말 테다. 살고 싶다.
똑똑.
“옆집입니다! 안내문 꼭 읽어보시라구요!”
하. 진짜 성가시네. 인류애가 가득한 건 알겠는데, 나한테서는 그 마음을 거둬줬으면 좋겠다. 난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있었다.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이승에서 나를 깨우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허송세월 보냈다. 놀라서 깬 건, 낮에는 늘 화창하고 밤에는 늘 별이 반짝이던 이 마을에 천둥 번개가 요란했을 때다. 내 머리 위에서만 난리 치는 줄 알았던 날씨가 아니었나? 이불을 휘감고, 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었다. 비 냄새가 흙에 스며 물 비린내가 코를 후볐다.
“이승으로 돌아가지 못했대요.”
옆집 청년이 말했다.
“돌아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셨다는데, 기간 안에 다 채우지 못하셨나 봐요.”
“뭘.. 채워요?”
“안내문에 나와있는 대로요. 저는… 좀 막막하네요.”
씁쓸해 보이는 청년의 안위 따위 살필 여유는 사치였다. 해야 하는 게 있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슨 미션 같은 걸 해내야 하는 거다. 나는 집 앞 울타리로 달렸다. 귓가에는 천둥이, 눈앞에는 번쩍이는 번개가 위협해 왔지만 상관없었다. 난 어차피 죽어가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안 무섭거든. 우체통에서 안내문을 꺼냈다.
‘안내문.
안녕하십니까, 신규 입주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이승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며, 이승에 남은 이들을 끝없이 그리워하여, 영혼만 먼저 승천한 분들입니다.
그렇기에 저희 마을은 여러분께 기회를 드리고자 만들어진 목적을 다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각자의 장점과 특징은 다릅니다. 이에 따라 수행하셔야 할 미션도 상이합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이뤄내십시오.
송이님의 이승에서의 직업은 “작가”였습니다.
따라서 이승으로 돌아가시려거든, 여태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십시오.
육신이 찾아오기 이전에 완료하여야 합니다. 그 기한은 본인만이 알 수 있습니다.
진심이 전달된다면, 어느 날, 송이님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곳에서 눈을 뜨실 수 있습니다.
바라시는 대로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겠습니다.
관리자 드림.’
잊고 싶은 인간들만 수두룩한데, 글을 쓰라고? 그들을 위해서? 이건 그냥 죽으라는 거 같은데. 고약한 천둥이 이명을 몰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