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승강장

1화

by 글한송이

이곳의 공기는 맑다 못해 투명하다. 날씨는..글쎄, 내 감정 상태에 따라서 하늘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어서 콕 집어 말할 수가 없다. 여기가 어딘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이상한 곳. 안내원 지시에 따라서 줄지어 걸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세 갈래로 나뉘어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난 어디로 가는 거지?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은 혼란을 못이겨선지, 두려움에선지 줄을 이탈해 걸어온 곳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텔레포트 마법에 걸린 것처럼. 무심하게 힐끗 시선을 거두고 다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세 갈래의 길 끝에는 30층 아파트만큼 커다란 문이 놓여 있었다. 문이 열리면 눈을 뜰 수 조차 없는 환한 빛이 시각을 마비시켰다. 그러면 문을 연 안내원이 손을 잡고, 문으로 이끈다. 그리곤 스르륵, 문지방을 넘어 사라진다. 한쪽은, 소리를 지르면서 사라지는데, 문 너머가 절벽인가 싶다. 지옥인 걸까. 긴장감을 달래려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호텔 벨보이같은 이미지의 안내원 손을 잡았다.


땅의 딱딱하면서도 푸른 잎의 축축한 감촉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크게 훑고 지나갔다. 꿀꺽 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평화로운 어떤 마을이 환하게 들어왔다. 솜사탕을 들고 깡총깡총 뛰는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 할머니, 화려한 힐을 신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풍선껌 언니, 이제 막 이사 온 건지 짐 정리를 하고 있는 청년. 그 한가운데 내 이름이 걸린, 작은 집이 있었다.


해외에서 몇 개월 지내봤고, 툭하면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외박을 일삼았지만, 내가 돌아갔던 곳은 늘 엄마, 아빠, 동생, 강아지가 있는 우리 집이었다.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이 넘치고, 어느 때보다 차가운 상처를 주고 받던 공간. 하지만 내 이름이 걸린 이 집엔 나 혼자였다. 방해받고 싶지 않은 사춘기 소녀가 아닌데, 책임감에서 벗어나고자 누군가의 간섭이 필요한 어른이가 되었는데, 어떻게 인생은 늘 반대로만 흘러가는 건지.


“짐 정리 도와드릴까요?”


이삿짐을 정리하던 청년이 나를 찾아왔다.


“아뇨, 짐이 없어서.”


방에 놓여있는 박스에는 노트북과 종이뭉치, 검은색 펜이 전부였다. 집 책상에 놓여있던 내 물건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셨나봐요, 저는 버리질 못해서 집이 가득 찼어요.”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청년이 불편했다. 아직 나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지 못했고, 불안과 초조함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사람을 좋아했지만, 사람이 싫었고, 옆에 누군가 없으면 외로웠지만, 이름 모를 이들을 지나칠 때마다 체력이 1씩 깎여 나중에는 hp 0으로 귀가하곤 했다. 모르는 게 전부인 이 세상에서 처음 보는 청년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귀찮음이 전부였다.


“여기는 SOUL 마을이에요. 이승에 몸을 두고 영혼만 올라온 거라,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마을이죠. 그쪽은요?”


그의 말은 지금 여기가 이승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이승에 몸이 있다는 건 아직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니라는 건데. SOUL 마을이라는 건 어쩌면, 영혼 승강장 같은 곳인 건가.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호그와트로 가려고 뛰어들었던 그, 9와 3/4 승강장, 그런 가당치도 않는 곳에 내가 와있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고 싶었다. 바깥의 온화한 햇살, 밝은 사람들의 표정, 푸릇한 잔디, 여유로운 걸음들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몸도 안 좋은 애가 빨빨거리고 돌아다닌다고 한소리 들었던 튼튼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머리 위에 먹구름이 몰려와, 온몸이 비로 젖었다. 비로소 내가 입고 있던 옷을 확인했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죽게 내버려두라며 울고 있는 엄마한테 소리를 질러 온통 해진, 병원복이었다. 비가 그쳤다. 눈이 내렸다. 추위에 손이 덜덜 떨렸다.


“나, 죽어가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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