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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한송이 Aug 25. 2023

데자뷔

25화

환영받지 못할 거란 생각은 안 해봤다.

최소한 이 사람은 언제나 나를 웃으면서 반길 거라고 생각했다.

오만이 극에 달했던 모양이다.


"미안해요. 그때 그렇게 말해서."


깔끔하게 인정할 건 해야지.

낯부끄러웠지만, 쿨한 척 빠르게 사과했다.


"네. 그럼 들어가 볼게요."


엥?


당황스러웠다.

얼마나 화가 난 건지, 그게 그렇게까지 상처받을 표현이었던 건지,

도무지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잖아요."


문을 닫으려던 청년은 한숨을 푹 내쉬고 문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럼 왜 찾아와서 사과하는 거죠?"


그야 그냥 뭔가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래서 대책 없이 찾아왔더니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갑게 굴길래 일단 미안하다 하는 게 먼저겠구나 생각했으니까요..


라고 말할 만큼 뻔뻔하다거나 멍청하다거나 배려심 없진 않아서

잠시 머리를 굴렸다.


"난 기회를 많이 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은 방금 그 기회를 날려 먹었고."


"예? 뭐 기회를 한 번밖에 안 줘요?"


쿵.


심장이 갑자기 쓰라렸다.

어디서 본 듯한 지금 이 상황이 상당히 불편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토록 매정해 보였을 거다.

인색한 성품 덕에 누군가에게 크게 실망하고 나면, 두 번의 용서는 베풀지 않았다.

말하지 않고 꾹 참아온 게 나로서는 기회를 여러 번 준 셈이었으니까.

사람들은 그래서 늘 억울해했다.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냐고.


그걸 왜 몰라. 말을 해야만 알아? 그럼 애초에 그런 짓을 안 하는 사람들은 뭔데?

이게 내 기본 생각이었다.


"저라면,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은 안 했을 거 같아요. 그게 진심이었으니 무심코 튀어나왔던 거겠죠."


이 사람,

나와 똑같다.


어쩐지 그래서 거슬리고 그러면서도 같이 있으면 편하고,

오지랖이라고 욕하면서도 따라다녔던 거야.


기대 이하의 사람들이 내게 했던 불평이자 조언을

타인에게 먼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마음은 변하잖아요. 그땐 말을 그렇게 했고, 그쪽 말대로 그게 진심이었을 수도 있죠.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진심으로, 그쪽한테 미안해요."


"저도 미안합니다."


청년이 문을 쾅 닫았다.

나는 어지러움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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