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몸이 개운하긴 커녕 더 찌뿌둥했지만 머리는 맑았다. 만성 편두통을 가진 나에겐, 이게 더 반가운 상태라서, 괜스레 마음도 상쾌했다. 탁 트이는 박하사탕이 입에 들어간 느낌이랄까. 햇살이 나른하게 베개를 비추는 걸로 보아 아마 11시쯤 됐겠다. 늦은 아침을 시작하는 날은 유독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래도 급할 거 없이 여유로운 기상을 마치고, 얼음물을 마셨다. 무겁던 어깨가 찬 기운에 꿈틀대더니 한결 가벼워졌다. 공복엔 체온과 비슷한 따뜻한 물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좋다는 대로 다 하고 살려면 숨 쉴 여력이 없을 테지. 그래서 그냥 내 멋대로 산다, 언제나 그렇듯이.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사과 한 개를 냉장고에서 꺼내 깨끗이 씻은 후 와그작 베어 물었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도 흘러내릴 일 없게 꽉 조여 묶고 책상에 앉았다. 내일 수업 준비를 미리 해두고 저녁 즈음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갈 계획이었다. 나가는 건 지치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한국어 수업은 한국어를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로 나누어 진행되곤 했으나, 한국 문화도 익혀 충격을 줄일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포함되었다. 굳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것들을 나서서 소개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개고기라든가. 이번엔 한국인들의 언어 습관을 짚고 넘어갈 차례였다.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부정문 사용을 편하게 생각한다. 상대에게 부탁하거나 허락을 구할 때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사과를 먹고 싶은 아이들은 부모님께 과자를 먹어도 되냐고 묻는 게 아니라, 과자 먹으면 안 되냐고 눈치를 본다. 처음엔 별로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여겼었는데, 하나의 문화이기에 그 배경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싶어 찾아봤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상대가 부탁을 거절해도 그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의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해도 돼?'라고 물었을 때 '안 돼.'라고 대답하기보다, '하면 안 돼?'라는 질문에 '응, 안 돼.'가 더 부드러우니까. 그래서였을까, 어제 내가 시환의 커피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것은. 그는 늘 긍정문으로 물었다. 커피 한 잔 할래요?, 김밥 좋아하시려나?, 뭐 좋아하세요? 그의 질문에 '안'이라든가 '못'이라는 표현은 여태 한 번 없었다. 상대의 안녕을 묻는 인사법을 가진 우리나라답게, 다정하고 예의 바른말들만 줄곧 이어졌던 그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언제부터였는지 공부하겠다고 펴놓은 책과 공책엔 알아볼 수 없는 낙서만 가득했다.
지이잉-
어디에 뒀더라. 날짜와 시각 확인 외엔 쓸모없는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멍하니 시환의 생각으로 가득 찼던 내 머리가 번뜩 깼다. 엄마 전환가 싶어 귀를 기울였지만, 두 번의 진동만 울린 덕에 폰 위치는 오리무중이었다. 어차피 집중도 안 되던 차라,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침대와 벽 사이에 낀 채 자리하고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따뜻한 오후예요.'
'식사하셨어요? 아직이면, 소풍 갈래요?'
동네 공원을 걸으려던 소박한 오후 일정이 크게 바뀌었다. 강의 준비가 있으니 해 다 진 후에 보자고 약속 시간을 미룬 뒤 발휘된 집중력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덕분에 7시까지 무려 두 시간이 여유로웠다. 오래 앉아 있어 경직된 어깨를 잠깐이라도 풀어주려 침대에 풀썩 누웠다. 뭘 입고 나가야 하나, 머리는 묶을까 푸를까, 소풍이면 운동화가 편하겠지. 출근하면서는 해본 적도 없는 옷차림 고민에 금방 일어났다. 옷장을 열어보니 온통 셔츠와 무채색 T셔츠, 블라우스와 슬랙스가 전부였다. 옷에서부터 내겐 재미라는 게 전혀 엿보이지 않아 난감했다. 어제는 제안에 응한 게 처음이라 어색함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겠지만, 오늘은 몇 시간의 준비가 가능한 시간이 주어졌다. 대책 없이 나갔다가 한 마디도 않고 돌아오면 분명 실망감만 줄 텐데 걱정이 됐다. 영어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밝고, 적극적이고, 별 소소한 일도 엄마 앞에서 대단한 일처럼 쫑알거리던 내가 이렇게 메마른 사람이 될 줄이야. 새삼 서글펐다. 그리고 문득 시환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거지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매우 이기적인 남 탓을 시작했다. 물론, 자존심이 상해 금방 그만뒀다. 그래도 쓸데없는 곳에 사치를 부리지 않을 수는 있었다. 늘 입는 대로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실망할 테면 하라 해. 나야 안 귀찮고 좋지.'
얼마 만에 온 한강인지, 탁 펼쳐진, 아직 연둣빛인 잔디밭과 해를 품은 강물을 보니 속이 환히 트였다. 강바람이 선선히 불었다. 머리 묶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기특했다.
"송이 씨!"
시환이 손을 번쩍 들어 크게 흔들며 다가왔다. 어깨에는 돗자리가, 다른 한 손에는 짐이 가득 들려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도 모나미 룩이었다.
"조금 늦었죠? 오다가 돗자리를 깜빡해서 사 오느라고요. 오래 기다렸어요?"
돗자리라니. 부모님과 김밥 싸서 소풍 나온 어린애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가 난감했다. 난 벌레라면 기겁을 한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 다리에 알을 까고 사라진 집게벌레 때문에 살을 칼로 째고 불로 지지고 했던 경험이 있다면, 설사 그게 초파리라 할지라도 두려워할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자취방에 들어온 나비를 보고 울부짖으며 업체를 부른 적도 있었다. 정말 싫다. 싫은 정도가 아니라 무섭다. 신경이 예민해져 온 몸이 저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 지끈거리고 통증이 심해진다. 심장마비로 사망한다면 그건 아마 다리 여럿 달린 곤충들 때문일 거다. 그런데 지금 개미가 들끓는 곳에 자리를 깔고 앉자는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바람에 돗자리가 뒤집히지 않도록 신발까지 벗은 그는 순수한 눈망울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엔 김밥이 자리했다.
"짠! 제가 직접 싼 김밥입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는 까닭은 내가 특유의 순수함과 애교에 완전히 무너지는 무력한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워낙에 귀엽지 않은 스타일이다 보니, 나와 반대되는, 일명 사랑스러운 이들에게 꼼짝 못 했다. 시환이 딱 그 전략을 취했다. 알고 그런 게 아니라 미워할 수도 없었다. 주변, 특히 흙 속의 무법자들을 경계하며 조심히 앉았다. 시환이 젓가락을 건넸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사과 뿐이어선지는 몰라도 김밥은 상당히 맛있었다. 하나만 먹고 일어나 걷자고 하려 했는데, 자꾸만 손이 갔다. TV 속 연예인들 같은 맛 감상평은 없었지만, 사탕 발린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선지 시환도 질문 없이 김밥을 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도시락통이 비워졌다.
"맛있었어요. 고마워요. 오늘 첫 끼였거든요."
그러자 시환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게 이런 반응을 보이긴 한다. 엄마나 아빠도 매일 같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독립하고부턴 뜸해졌지만, 이따금씩 찾아가면 상다리가 부러져라 음식이 준비되어 위가 터질 지경이었다.
"1일 1식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인가요?"
응? 처음 받은 질문이다.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했다. 그것만 먹고 어떻게 사냐, 건강 다 망가진다, 살도 없으면서 무슨 다이어트를 그리 가혹하게 하냐... 이런 반응이 정상이라고 여겨왔다. 잘 살고 있다, 너보다 건강하다, 옷으로 가린 살이 보이는 초능력이라도 있는 거냐. 대꾸할 거리가 많았는데, 시환의 물음엔 얼빠진 말만 나왔다.
"아, 그, 그게 아니라-"
사실 누군가의 예상 가능한 행동들은 정상적인 것과는 딱히 관계가 없었다. 그냥 그들이 보기에 내 식습관에 문제가 있었을 뿐, 난 비정상이 아니라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날 폄하해 왔다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하하, 송이 씨 얼굴 빨개졌어요."
아름다움이니 뭐니 하는 소리에 민망했을 거라 생각한 건지, 시환이 장난을 쳤다. 뭐가 됐든 개의치 않았다. 편협한 사고에 갇혀 살아왔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보다야 나았다.
"대신 앞으로는 아침에 만나자고 해야겠어요. 전 아침을 빼먹으면 기운이 안 나더라고요. 내 김밥 기다리느라 굶길 순 없으니까. 어때요?"
무슨 자신감인지 그는 늘 여유로웠다. 인간관계에 여유를 부릴 수 있다니 부러웠다.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었다. 해가 저물며 뿜어내는 노을빛, 비릿한 강물 내음, 두 손 꼭 잡고 길을 거니는 연인들. 한가로운 저녁 분위기에 취해 잊고 있던 개미가 출현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시환은 바람을 쐬며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은 눈치였지만 더는 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