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나는 내가 싫은데, 너는 나를 좋아한다. <5화>

by 글한송이

결국 벌레에 심각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음을 실토했다. 아빤 내가 귀뚜라미를 보고 울었을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냐 신경질을 냈는데, 시환은 진심으로 걱정했다. 심장이 아플 정도면 심각한 일이라며 다음부턴 돗자리 따위 준비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선언했다.


"어머니가 심장이 안 좋으셨대요. 그래서 일찍 떠나셨고."


왜 이리 내 심장에 지극정성인지 설명되는 부분이었다.


"제 심장은 성장을 멈췄대요. 몸은 성인인데, 심장만 어린이인 거죠. 그래서 혈액순환에도 문제가 있고 신경도... 어쨌든 그래도 김밥은 맛있었어요."


한강을 따라 난 산책로는 봄을 준비하느라 얼룩덜룩했다. 자꾸만 그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내 마음도 저렇게 그로 얼룩졌단 걸 인정하기까지 딱 10분이 걸렸다.




날은 제법 어두워졌고, 봄바람은 아직 겨울을 품어 차가웠다. 앞서 걷는 연인은 서로를 꼭 껴안고 체온을 나눴다. 나와 시환이 그들을 지나쳤다.


"송이 씨는 선생님이신 거죠?"


"외국인들한테, 한국어 가르치고 있어요."


선생님이라 하면 학교에서 근무하거나, 과외 또는 방문 학습지 선생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정말 이런 직업이 있다. 특히 요즘처럼 한류로 인해 한국어 학습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시기엔 이 직업이 꽤 유망했다. 계약직이고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우와, 국어도 어려운데 한국어라니. 뿌듯하시겠어요."


글쎄.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딱히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는 편은 아니었다. 강사 일도 어릴 적 꿈 꿨던, 현실의 벽에 일찍이 포기한 작가라는 직업 대안으로 선택했을 뿐. 그때부터였다. 세상은 나를 필요로하지 않는구나 느꼈던 게. 아, 그래도 딱 한 번, 한 학생의 표현에 보람을 느껴본 적은 있었다.


"한 친구가, 저랑 하는 수업은 늘 놀다 가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쉽다고요. 그때, 제 모든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죠."


그 날 이후, 딱히 인상적인 학생을 만났다거나 하진 않았다. 어쩌면 내게 감동을 선사한 이 친구를 잊고 싶지 않아 관계에 결계를 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나는 그러고도 남았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는 건 달갑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엄마 아빠가 이혼 후, 혹은 사별 후 재혼을 한다면 난 극구 반대다. 혼자 있으니 강아지라도 키우는 게 어떻냐는 제안도 거절이다. 유년 시절을 함께 한 반려견을 대신 메우고 싶단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설사 이번 생을 마친 그 아이가 환생한다 해도, 죽음을 목격한다면, 끝이었다. 문득 어제 대타로 들어갔던 고급반 수업에서 나눈 토론 주제가 떠올랐다.


"어젠 토론 수업이 있었어요. 주제는 환생이었고요. 인도 학생이 있어서, 당연히 환생을 믿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독교인이라고 하더라고요. 문화 존중이 기본인데, 무례한 선입견이었죠. 창피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땐 이 일이 나한테 맞나 싶고."


시환은 백 번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전 아직 학생이거든요. 배달 아르바이트하느라 홍대 쪽에 드나들긴 하지만, 취준생이에요. 어떤 일이 맞을지 여전히 고민 중이고요."


취준이라니. 지난 과거 떠올라 나까지 괴로웠다. 아직 학생이라는 데에서 대충 나이가 나와 비슷할 거라 짐작했다.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보통 26살에 졸업이니까.


"교수님들은 연구원으로 연결해 줄 테니 석사 하자는데, 잘 모르겠어요."


난 해결방안이 없는 고민을 오래도록 끌고 가는 걸 안 좋아한다. 묻지 않는 게 배려라고 배우기도 했고.


"환생 믿어요? 다시 태어난다든지."


종교적인 부분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다지 달가운 대화거리는 아닐 거였다. 표정을 살펴보니 그렇지는 않은 듯 보였다.


"음, 어렸을 때 성당 가서 스님이 꿈이라고 한 적은 있었어요. 다음 생에 돌멩이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어야 한다고 징징거렸죠."


웃기면서 공감 가는 소원이었다. 논리 정연하게 말하며 무슨 일이든 잘 해내며 멋진 사람이 되어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나갈 술 알았던 25세. 이렇게 삶에 회의적이게 될 거라곤 몰랐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아예 환생이란 개념이 없길 바랐다.


"하나 궁금한 건, 우리가 지난 생에 영혼의 환생 버전이라면, 그 옛날부터 인구가 이렇게 많았나? 싶은 거죠. 아니면 한 사람의 영혼이 여러 개로 쪼개진 걸까? 그래서 쪼개진 반쪽 영혼을 찾아 연인이 되고 또 가정을 꾸리는 건가? 그렇기 때문에 우린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나? 하고요."


새로운 시각이었다. 난 혹자에겐 지루하기만 할 철학적인 대화에 흥미를 느꼈다. 시환은 대화 상대로 완벽했다.


"어쩌면요. 전 어떤 사연에도 아무렇지 않은데 이상하게 역사 영화만 봤다 하면 눈물이 나요. 화나고 분하고 억울해서. 대체 뭘 위해 저렇게까지 할까 싶고. 그러면서도, 만약 나였더라면 하고 대입해 보면, 저도 그랬을 거 같아요. 아마 전생에 제대로 못 돕고 죽어서 한이 됐나 봐요."


시환은 피식 웃었다.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간 사람도 아니고, 엑스트라 같이 사라져 버린 누군가 중 하나라고 여기는 게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난 그들이 있었기에 주역들이 성공을 이끌었을 거라 믿었다. 유비보단 관우에게, 셜록보다는 왓슨에게, 유정보다는 백인호에게 애정을 느꼈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를 위한 페이스메이커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은 이런 날 탐탁지 않아했지만.


"그리고 지금까지의 저로 봤을 때, 전 운 좋게도 온전히 환생한 인격체였던 거 같고요."


"왜요?"


"혼자 살아가는 데 아무 결핍이 없었거든요."


그의 이론은 연애 경험이 전무한 나를 이런 결론으로 다다르게 했다. 시환은 보조개가 예쁜 사람이었다. 희미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지만, 한 번 눈에 들어오니 계속 시선이 갔다. 그는 내 결론에 옅은 보조개를 드리웠다.


"그럼 합이 안 맞잖아요. 난 어디서 온 건데요? 내 반쪽 영혼은요?"


".... 돌멩이였나 보죠."


푸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미소는 내게 남은 경계심을 완전히 풀어헤치고 중학생 이후 조금도 커지지 않은 심장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크기가 작아서, 순식간에 그 온기가 퍼졌고, 얼룩진 채로 날 채워가던 이상한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그와의 계획에도 없던 저녁 소풍을, 다음에도 또 오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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