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첫째가, 첫째가 되는 순간부터 동생을 질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문가의 설명을 본 적이 있다. 단지 이들은 자신만의 경계 울타리가 난데없이 끼어든 존재로 인해 멋대로 여닫히고 무너져 다시 세워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혼란스러운 것으로,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단 얘기였다. 아쉽게도 나의 부모님은 이러한 첫째의 심정을 간파할 위치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 엄만 막내딸이었고, 아빤 누나와 형, 남동생이 있는 차남이자 셋째 아들이니 그럴 만도 하다. 덕분에 난 동생의 탄생과 함께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언니니까, 어른이니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조상들의 지혜에 따라 늘 동생을 챙겨야만 했다. 부모님이 날 제어해야 할 때의 좋은 무기였다. 세뇌교육의 무서운 점은 바로 여기서 온다. 난 정말 내가 뭐라도 된 마냥 동생에게 절대적인 언니가 되기 위해 많은 부분을 포기해 왔다. 정신과 의학박사 학위를 밟고 있는 한 친구는 내 완벽주의적 성격이 바로 여기서 왔을 거라 추측했다. 아이들을 잘 다루지 못하는 것도 어린 시절의 환경 탓일 거라 덧붙였다. 내가 아이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른다는 게 그의 소견이었다. 평생 안고 가야 할 답답함이겠지만, 나 역시 내가 언니라는 점을 이용했다. 비열했지만, 내 생존 방식이었다. '언니'가 아니면 사랑받지 못하는 시절은 결국 끝나기 마련이니까.
둘 이상이 먹느니, 귀찮음을 선택하고 말지 싶다가도, 어렴풋이 시환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음식 배달인지, 택배 인지도 몰랐지만, 혹시 그와 마주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김쌤의 제안을 수락했다.
"오~ 웬일이야? 좋아! 한쌤 말 바뀌기 전에 주문해야지. 토요일 대타 고마우니까 내가 쏠게요!"
미사여구가 불필요하게 많았지만, 어쨌든 할 말을 다 하고 쏙 가버린 덕에 따로 반응하지 않아도 돼서 감사했다. 교사 연구실에서 강의 준비 대신 수다로 혼을 빼놓고 사라진 동료 탓인지, 고요함이 방금 내가 저지른 일을 상기시켰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설마 정말 시환이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와 버리면 어쩌나 조급해졌다. 괜히 거울을 힐끔 거리고, 묶고 있던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 풀었다가, 다시 묶기를 반복했다. 잔머리가 어제보다 많이 삐져나온 듯한 건 기분 탓이겠지. 배달시키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아르바이트 생도 학생, 직장인, 주부 할 것 없이 다양히 분포돼 있으니 꼭 시환이 오리란 보장도 없다. 취준생이 점심때 책상이 아니라 오토바이에 앉아 있을 것도 아닐 테고. 보통 퇴근 시간에 마주쳤으니까 지금 시각은 이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도시락을 먹을 이유도 사라졌다. 아침 일찍 든든히 먹고 온 탓에 여전히 배가 불렀다.
"김쌤, 저는 그냥 점심 굶으..ㄹ..."
"배달 왔습니다!"
배달원과 눈이 마주쳤다. 헬멧 틈으로 보인 옆으로 째진 눈매는 시환이 아니었다. 숨을 쓸어내렸다. 여자 배달원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가시까지 디테일하게 제작된 장미 조화에 찔려 검지 손가락 끝에서 피가 났다. 원장이 배달원에게서 음식을 받아 들어왔다. 원장까지 같이 먹는 건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난 친분이 없는 타인과는 밥을 못 먹는다. 내가 마음을 풀지 못했다면 절대 불가다. 체한다. 원장은 어연 2년째 아침저녁으로 주 6일을 만나고 있지만, 여전히 '남'이라 회식이 있는 날에도 가능한 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내가 문제다. 알지만 어떡해. 안 고쳐지는 걸. 김쌤이 화장실에서 나와 물기 젖은 손을 털었다. 지금이라도 식사에서 빠지겠다고 말할 생각으로 냉큼 붙잡았다.
"쌤, 저 오늘-"
"배달 왔습니다! 도시락 시키신 분!"
낯익은 목소리였다. 김쌤은 신이 나서 달려갔다. 헬맷을 벗은 건지, 달칵이는 소리가 들렸다. 조잘대는 대화 소리는 덤이었다.
"어머, 되게 젊어 보이신다. 학생이에요? 용돈벌이?"
"네, 알바 중이에요. 도시락 두 개 맞으시죠?"
심장이 쿵쿵댔다. 심장 박동이 얼마나 크게 울렸으면 손끝 피가 바닥에 톡 떨어졌다. 학원 중앙에 있는 사물함에서 구급약 상자를 뒤적였다. 작은 상처긴 하지만, 피가 계속 흐르도록 둘 수는 없어서 밴드를 붙였다. 김쌤은 시환에게 계속 말을 붙였다. 능글맞고 친절한 시환을 미워할 사람은 당연 없겠지만, 배달원을 저리 오래 붙잡고 있다니, 의도가 뻔했다. 토요일 소개팅까지 망친 마당에, 자연스러운 만남은 더욱 인연이고 운명인 것처럼 느껴지겠지. 얼굴을 보이지 않고 휴게실로 가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의도적으로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배달원은 시환이 맞았고, 그는 내 생각보다 더 격하게 반가움을 표했다.
"송이 씨! 여기서 근무하는 거였구나!"
김쌤은 나와 시환 사이에 낀 제삼자가 되어버리자 눈을 끔뻑였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파악하는 움직임이었다. 난 몰랐던 척하지 않고 맞받았다.
"익숙한 목소리다 했더니, 역시 시환 씨였네요."
"하하. 송이 씨 기다릴 겸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여기 사장님이 급하다고 연락하셔서요. 근데, 손은 왜 그래요? 다쳤어요?"
대충 감은 밴드 위 피로 진 얼룩을 본 시환이 걱정을 가득 담아 손을 살폈다. 아무것도 아니라서, 급히 등 뒤로 숨겼다. 그게 더 신경 쓰이게 만들 줄은 정말 몰랐다.
"아니에요. 배달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이따 끝나면 연락 줄래요? 맞춰서 대기할게요."
알았다는 약속을 받아낸 시환이 나와 김쌤에게 인사하고 등을 돌렸다. 자, 이제 김쌤의 눈초리를 견뎌야 했다.
"뭔데? 저 잘생긴 오빠야랑 무슨 사이인데요?"
무슨 사이도 아니었기에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얼버무리는 게 전부였지만.
퇴근 시간. 시환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했던 한 시간 전과 달리, 현재 마음이 매우 편안한 상태다. 연락은 물론 안 했다. 그냥 그 카페에서 내일 강의 준비를 할 작정이었다. 월요일, 남들은 지쳐 쓰러져가는 퇴근길에 난 설렘을 안고 카페로 향했다.
"시환 씨."
"어? 연락하지, 나갈 텐데."
카페인 없는 과일 주스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옆에 나란히 앉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이는 창가 자리는 답답하지 않아 공부하기에 딱이었다.
"저도 할 일이 있었거든요. 방해될까요?"
"그럴 리가요."
집 가서 남은 부분을 봐야 해 마음만 급해지던 통해 다 끝내고 가면 시간적으로도 여유롭다며 즐거워하는 시환 덕에 마음이 놓였다. 민폐 끼치는 건 정말 죽어도 싫으니까. 한 시간 정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각자 할 일에 열중했다. 대학생 때도 남들과 공부하길 꺼렸던 이유는, 내 페이스대로 착착 진도를 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할 말을 어디서 만들어 오는지 여하튼 집중에 방해되기 일쑤여서, 혼자가 편했다. 시환은 나와 비슷한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글씨 되게 잘 쓰네요. 글 많이 써 봤죠?"
집중이 막 흐트러져서, 어둑어둑해진 길 위 사람들을 관찰하던 걸 들켰다. 시환의 말에 따라 내 시선도 공책 위 글씨로 향했다. 글 쓰는 것.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접고 만 오랜 꿈이자 미련의 한 장이었다. 내 해괴망측한 상상력을 말로 할 수 없을뿐더러, 털어놓으면 비정상 취급을 받아서, 그때부터 적어두기 시작한 메모가 하나둘 모여 글을 이루었다. 글작가 길은 너무 좁았다. 그래서 방송 쪽 공부를 하며 방송영상 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를 하고자 했으나, 이도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전환한 현 직종, 한국어 교원 강사. 봉사활동으로 시작해 직업이 되었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국어가 전부였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몇몇 친구들은 방송사에서 실제 일을 하며 지낸다. 그리고 이들 얘기를 듣다 보면 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이제 와서 그쪽 일을 하고 싶대도 그들이 날 받아줄까 싶다. 설사 기회가 생겨하게 된다 하더라도, 자신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쓴 이야기를 사람들이 대화 주제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허황뿐인 희망은 늘 가슴속에 묻혀 왔다. 학교 과제로 썼던 시나리오의 트리트먼트를 활용해 글을 써볼까 했지만, 이젠 완전히 틀어져버린 팀원 한 명이 완강히 허락하지 않은 탓에 무너졌다. 그러고 나니 다른 아이템도 떠오르질 않았다. 내가 맡은 부분에 대한 것만 쓰겠다고 자존심을 꺾어가며 다시 물었지만 돌아온 건 비아냥과 차단. 활발히 굴러가던 뇌 회로가 순간 정지해 아무런 사고도 할 수가 없었다.
"쓰고 싶었던 소재가 있었는데, 조별 과제 작품이었어요. 저한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팀원이 절대 싫다 그래서 그냥 접었죠."
"왜요?"
"에? 그야 저작권 문제도 생길 테고.."
시환은 내 말이 한 낱 변명, 혹은 핑곗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안 된다고 할 권리가 있나?"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일까 하다가 말았다. 그때의 짜증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지난 얘기고, 난 그 팀원이 뭘 하고 살든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송이 씨는 충분히 색다른 스토리를 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근거 없는 믿음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였다. 첫째이기에 양 어깨에 지고 있어야 하는 출세라는 부담은 다 저런 가벼운 응원과 위로 속에서 탄생했다. 글로 성공하긴 힘들다. 작가로 성공하는 법보다 작가로 살아남는 법을 연구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글을 놓은 지 오래됐고, 이젠 감정까지 메말라 기상천외한 상상력도 발휘할 자신이 없었다. 필력은 논쟁할 가치도 없다. 재능이 있었다면 일찍이 눈에 띄었을 터. 고로 난 그냥 글쓰기를 좋아하는 정도에서 그칠 사람이다.
"아까 창 밖 보면서 멍 때렸어요?"
".. 아뇨. 사람들 봤어요."
짝 소리 나게 손뼉을 친 시환 때문에 카페에 있던 손님들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논을 돌렸다. 난 사람들 눈치에 얼굴이 절로 숙여지는데, 시환은 아랑곳 않았다.
"작가의 필수 덕목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라던데. 봐, 송이 씬 자세가 됐잖아요."
내 의지가 아니라, 팀원에 의해 글쓰기엔 손도 못 댔다. 근데, 이제 와서 다시 펜을 잡는다? 겁이 났다.
"내가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그렇지만, 송이 씨가 의지대로 관둔 게 아니라면, 아직 이르다고 봐요. 우리 아직 평균 기대수명에 반도 안 살았는데, 미련 남게 사는 거 너무 바보 같잖아요. 후회 없이 살아야죠. 살아남을 궁리하지 말고."
살아남지 말고 살기 위해. 책 틈 사이에 끼워진 펜을 한참 응시했다. 해봤다. 무너져도 봤고 공모전에 입상했을 땐 감격해 며칠을 설레어했다. 심심풀이로 썼던 웹소설을 본 출판사에서 계약을 원한다며 연락해 왔을 땐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다 무슨 소용인지 경제적 독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울컥하고 속이 끓어오르는 두근거림을 잊은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펜을 집었다. 그리고 필통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