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끝났으면 이미 저승이었겠죠. 그렇지만 난 지금 그 경계 어딘가에 있고,
아직 기회가 있단 얘기예요. 포기한 게 아니라 포기하려던 과정에서 다시 도전할 기회를 잡은 거고."
울컥해서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옆집 청년은 이마에 주름이 잡히도록 눈썹을 한 번 크게 움직였다.
"그니까 내 말은-
...
솔직히 맞아요.
좋아하던 거 싹 다 포기하면서 하루를 채워야 했던 그날들이 어렴풋해요.
데이트도 제대로 못 하고, 툭하면 몸져누워서 계획 다 망가지고,
배려를 당연하게 받아야 하고, 그렇게 조심히 생활하면서도 밤새 아파서 잠 못 자고,
또 병원 가고, 끔찍한 치료를 받고.
...
어제처럼 다 생생한 일들인데,
고통은 남 일처럼 뿌예.
다시 느낄 생각 하면 벌써부터 겁이 나요.
그래도.
지금보단 나을 거예요.
이미 날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는 일도,
다른 사람의 안녕을 빌어주는 일도,
날 기다리는 사람들 품으로 돌아가서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는 게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을 거니까요."
목이 탔다.
하지만 속은 시원했다.
한 줄기 눈물이 입가에 다다랐을 때 간신히 마른세수를 마치고
청년을 마주했다.
그는 창문 안으로 드리운 달빛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뭐지?
커피에 약을 탔나?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지금 저 사람, 사라지고 있는 거야?
너무 놀라 숨도 쉴 수 없었다.
달빛을 맞아 먼지처럼, 혹은 가루가 되어 서서히 사라지는 청년을 붙잡아야 했다.
이승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저승으로 가는 것만 같아서.
이제야 막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옆집 친구가 없어지는 게 두려워서.
어...?
진심을 털어놓았더니, 사라진다고?
"고마워요. 날 기억해 줘서."
"저기요, 그게 지금 무슨 말-"
"오늘 마음을 평생 간직해요."
사르륵.
여태 내 행동 중 가장 빠르게 손을 내밀어 청년의 팔을 잡았지만,
모래 가루가 손틈 사이로 반짝이며 흘러내릴 뿐이었다.
이게 뭐야.
난 당신을 몰라.
갑자기 나타나선 친한 척하고, 말을 걸고, 얘기를 하고, 뭔 일에 자꾸 휘말리고, 그때마다 그냥 내 옆에 있었을 뿐이잖아. 근데 내가 당신을 뭘 기억했다는 -
아.
머리가 띵했다.
뒷걸음질 치다가 다시 침대에 푹 앉았다.
"그런 거구나."
나는, 고통에 잠긴 나를 기억했다.
나는 고통을 떠나보냈다.
온몸의 긴장이 풀려 다시금,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