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왕자

남색 어른 <차은형, 1화>

by 글한송이

송이는 늘 파란색 같은 아이였다. 처음 만났던 그때 입고 있던 옷이 파란색이었기 때문일까, 웃을 때 시원하게 휘어지는 입꼬리가 그런 느낌을 줬던 걸까 오리무중이다. 하나 확실한 건, 싱그럽고 또 너무 푸르러서 탁한 빛을 띠는 나는 함부로 나란히 설 수 없었다는 거. 대신 항상 주위를 떠돌며 송이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맴도는 건 관뒀다. 송이에게 별로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너 정말 죽으려고 작정했어!"


약한 몸을 가졌으나, 마음만은 강한 친구였기에 무너지는 모습은 내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팔 그거 하나 못 쓴다고 손을 긋는다니, 그건 한심하기가 짝이 없는 짓이었다. 일단은 살아야 뭐라도 할 거 아니야. 우선은 잘 견뎌서 다시 전처럼 환한 미소로 온통 탁한 세상을 파랗게 밝혀야 할 거 아니니. 눈물은 마음속에 묻어두고, 송이를 타박했다. 하지만 송이는 세상이 온통 흙탕물로 얼룩져 그 영롱한 빛깔을 다 잃은 후였다.


"이렇게 살면 무슨 의미가 있는데? 쓸모 없어져서 산소만 축내면서 살아남으면, 그게 행복해?"


꿈을 가득 담은 예쁜 소녀. 남들보다 살짝 연한 갈색 눈동자에 가득했던 희망이 처참히 무너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이성을 붙들고 있는 내가 비정상인 것 같았다. 나였어도 송이처럼 행동했을 테니까. 식물처럼 한 곳에 틀어박혀 해가 뜨는 방향을 향해 고개 내밀며, 가뭄이라도 드는 해엔 약한 가지들부터 쳐내야 하는, 그럼에도 결국 말라비틀어져 가는 걸 감당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동시에 내가 삶의 의미가 될 수는 없는가 욕심이 났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싱그러운 미소를 봤을 때부터였을지, 제대로 된 생활이 불가능해진 데에서 시작된 동정심 때문인지 정확한 시기도 사유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송이가 살아야 할 수많은 이유들 중 하나가 나이기를 바랐다.


"살아남아. 행복은 그다음이야."


예쁘게 말해도 되잖아. 상처 받은 표정을 봐.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얘기할 필욘 없었어. 예쁨 받고 싶은 거 맞아? 서투르다는 핑계조차 아까웠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잔인한 말에 송이는 실소를 터트렸다. 제 편 하나 없는 거지 같은 인생이 비참해 흘러나오는 무기력함이 여과 없이 전달됐다. 아니라고 말해줄 걸,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혼자 힘으로 일어서야 하니까. 언제까지고 내가 의지 대상이 될 순 없다. 나야 좋지만, 송이에겐 안 될 일이다. 장녀 콤플렉스로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면서 부모님께 말씀 한 번 안 드린 송이였기에 더더욱 손을 내밀어선 안 됐다. 필요한 건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뿐, 내가 그 힘 자체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차은형 진짜 나빠."


괜찮아. 네가 원래의 너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거리낌 없이 나쁜 사람 할 수 있어. 다행스럽게도 송이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정밀 검사부터 다시 하나하나 꼼꼼히 받았다. 워낙 큰 검사라 몇 개월에 걸쳐 진행됐지만 더는 엇나가지 않고 착실히 병원에 나왔다. 한국어 강사를 시작하며 바빠졌지만, 전보다 얼굴에 생기가 돋지 싶어서 응원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가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내가 그랬다.


"오빤 왜 의사 한 거야? 맨날 아픈 사람들 보고 있기 지치지 않나?"


한 번은 송이가 이렇게 물어온 적이 있었다. 내가 의사가 된 이유. 송이 때문이었다. 만났을 때부터 몸이 약했던 송이를 손 한 번 못 써보고 잃는다면 그것만큼 끔찍할 게 또 없었다. 신경이 예민하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감정이 요동치는 섬세하고 여린 이 아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싶었고, 그나마 의사 노릇이 적합했다. 심리적인 측면으로 일조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제 얘기하기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괜찮아'가 전부였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걸 더 편하게 여겼다.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공감했다. 만일 전도유망한 상담사가 나와 송이를 면담했다면 PESM(정신적 과잉 활동 증후군)으로 정의 내렸을 거다. 감각이 예민하고, 생각이 많고,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는, 공감은 안 돼도 감정이입이 심해 소모되는 에너지가 큰 사람. 그래서일까, 비슷한 점이 많아 내가 널 좋아하게 된 건. 하지만 알고 있다.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너를 향한 나의 감정은 시한부일 수밖에 없다는 것. 언젠간 인어공주처럼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것. 그런데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그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와 힘들었다. 나는 너에게 힘을 주었는데, 그 사람은 너의 힘, 그 자체가 되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하루에도 수만 번 절망하고 다독이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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