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 UX 디자이너를 위한 나를 셀링 하는 법
온라인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 콘텐츠는 늘 조회수가 높다. 왜일까? 아마도 그만큼 UX 디자인이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관심을 받는 직종이라는 뜻이 아닐까. 실제로 지금 회사에도 심리학, 교육학, 컴퓨터공학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몇 명 있는 걸 보면 (물론 그래도 디자인 전공이 압도적으로 많긴 하다.) 그 많은 디자인 분야 중에서도 단연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별 거 없는 나도 전환할 수 있었겠지.
때문에 이제 비전공자가 던져야 할 질문은 더 이상 될 수 있는지 없는지 ‘가능 여부’가 아니라, ‘비전공자가 UX 디자이너가 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가’ 여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다.
비전공자가 디자인을 배우고 실제 취업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내가 생각하기에 2가지이다.
전공자가 몇 년에 걸쳐 배운 디자인 기초 혹은 툴 사용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디자인 관련 실무경험이 아예 없어서
여기서 2번이 문제다. 사실 툴 관련 지식이나 기본기는 개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그러나 2번은 다르다. 경험이 없어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사람에게 회사들은 너무나 당연한 듯이 관련 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인턴 경험이 없어서 취업이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이 말에 백번 공감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중고 신입을 선호하는 현상은 별 반 다를 게 없어서, 심지어 인턴을 뽑는 데도 이미 다른 인턴 경력이 있는 사람이 백배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신입 채용 공고에도 ‘1-2 year of experience’를 선호하다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 참 더러운 세상이다.
그렇다면 이 더러운 세상에서 비전공자는 어떻게 UX 디자이너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썼던 방법은 이렇다.
간혹 취업 상담을 해주다 보면 종종 학생들이 스토리텔링을 어려워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경험도 없는데 이력서 혹은 포트폴리오에 무엇을 내세워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것이다. 아니, 이 말은 틀렸다. 비록 디자인이 아닐지언정,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없다. 단지 포장을 잘 못할 뿐.
1년 만에 마케팅으로 도망치긴 했지만 나름 B2B 세일즈로 커리어를 시작한 나는, 신입시절 참 양질의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사랑합니다 전 직장), 그중에서 지겹도록 들은 단어가 Value Proposition(가치제안)이다. 여러 가지 설명할 내용이 많지만 핵심은 ‘고객이 우리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것이 없으면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없고, 차별화가 안되면 잘 팔릴 리가 만무하다.
약 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영업시절 배운 용어를 들먹이는 이유는 나는 이것이 취업시장에도 적용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몇 천명의 지원자 중에 내가 가진 강점은 무엇인가? 나만의 스토리는 무엇인가? 이것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인터뷰 전 과정에 녹아들어야 한다. 즉 있어 보이는 인재로 나를 포장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디자인 경력은 없었지만, 세일즈와 마케팅을 하면서 얻은 경험들을 토대로 아래와 같은 나만의 Value Proposition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만든 Marketer-turned-designer (마케터 출신 디자이너)는 나만의 태그라인(일종의 브랜딩 슬로건)이 되어 링크드인, 이력서, 포트폴리오 모두에 노출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나를 인터뷰 본 사람은 ‘아, 그 마케팅했던 애'로 나를 기억할 수 있다. 실제로 구직 시절 포트폴리오 피드백을 해주는 이벤트에서 운 좋게 내 것이 예시로 소개됐는데, 패널들이 ‘Nice catchphrase”라고 칭찬을 해주어 어깨가 하늘까지 솟았던 기억이 있다.
만약 나만의 Value Proposition을 찾는 것이 어렵다면, 이렇게 시작해보자.
내가 했던 모든 경험 (학교, 아르바이트, 인턴, 공모전 등)을 적어보고
이것을 비슷한 특징으로 카테고리화 한 다음
이것이 UX 디자이너로 일하는데 어떤 강점이 되는지를 고민해서
단어로 표현해보자.
태그라인은 이 단어들을 어우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모든 것은 브랜딩이다. 취업도 마찬가지. 나를 디자이너 채용시장에 놓인 Product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줄 수 있는 Value를 어필한다면 이것을 알아줄 회사는 반드시 나타난다.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누누이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전공자로서 취업 준비를 시작했을 때, 나는 나의 강점이 ‘B2B 출신 마케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B2B 회사에 가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SaaS (Software-as-a-Service), 그중에서도 협업 툴을 만드는 회사에 취업하고 싶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반적으로 B2B의 특성상 신입을 잘 뽑지 않기 때문에, 인턴을 거치지 않는 이상 B2B UX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도 B2B 기업에 들어간 주변의 지인들을 보면 열에 아홉은 거기서 인턴 후 전환이 된 케이스이다.)
‘이미 인턴은 물 건너갔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 나는 장장 4개월에 걸쳐 나 홀로 케이스 스터디를 시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Notion Redesign이다.
나는 이것을 Medium이라는 공개된 플랫폼에 기재했다. 공개된 채널을 활용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작업물을 노출시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좋아서, 이 케이스 스터디 하나로 총 5군데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심지어 Notion의 디자이너와도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아쉽게도 채용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취업은 결국 나를 증명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렇다. 내가 얼마나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혹은 이 회사와 케미가 맞는지를 증명할 수 있다면 신뢰도는 높아진다. 그리고 작업물로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한 증명은 없다.
영화 <클로저>의 대사.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여자(내가 너무 좋아하는 나탈리 포트만)는 말한다. 보이지도 않는 그 사랑, 대체 어딨냐고. 하물며 눈에 안 보이는 사랑도 보여달라고 하는 마당에 눈에 보이는 디자인은 더더욱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비전공자로 UX 디자이너가 되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끊임없는 배움과 증명, 그럼에도 거절을 밥먹듯이 당하는 것이 취업이니까. 더군다나 경험이 없다면 더더욱.
하지만 옛 말에도 있지 않은가. 시작이 반이라고. 많은 일이 그렇듯 결국 시작이 어려울 뿐, 일단 한번 발을 들이면 그 다음 스텝은 훨씬 쉬울 수 있다.
내 안의 숨겨진 강점을 찾아 예쁘게 포장해보자.
뛰어난 인재, 그거 결국 다 만들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