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잘 모르는 UX 디자인 포트폴리오에 대한 오해
잠잘 때가 제일 행복한 나에게 하루에 12시간 자는 건 일도 아니다. 장담하는데 오래 잠들기 대회가 있다면 아마 입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어디든 누우면 바로 잠드는 스타일이라 비행기를 타도 영화 한 편을 다 못 보고 잠들기 일쑤다. 그러니 살면서 밤을 새본 적도, 새울 생각을 감히 해본 적도 없다. 적어도 미국에 오기 전까진.
유학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수면장애이다. 낮과 밤이 바뀐 건 기본이고 하루에 3시간도 채 못 잔 날도 많다. 간간히 누적된 피로로 두통이 너무 심해져서 두통약을 먹고 억지로 잠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왜?
다 이 죽일 놈의 포트폴리오 때문이다.
포트폴리오는 중요하다. 디자이너의 얼굴이며 인터뷰로 가기 위한 포문을 열어주니 안 중요하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디자이너로서 나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는 여름 인턴을 구하기위함이었고, 이후엔 취업을 위해 졸업 후 업데이트를 밥먹듯이 했다. 조금 오버해서 말하면 마지막 인터뷰를 보기 전까지 한 500번 이상은 고친 것 같다.
그런데 누가 알았을까, 막상 취업을 하고 나니 ‘그 정도로 올인할 필요는 없었는데'라고 생각 할 줄이야.
과거의 나를 포함하여, 학생들이 구직 시 포트폴리오 관련 의외로 자주 범하는 실수 5가지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1) 포트폴리오’만’ 열심히 하는 것
포트폴리오가 시작에 불과한 이유는 1차 인터뷰를 가기 위한 관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1차 인터뷰까지만 가면 나머지 단계에서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다시 보여줄 일은 거의 없다. 또한 이 나머지 단계에는 디자인 챌린지부터 화이트보드 챌린지, 몇 차례의 프레젠테이션이 포함되어있다. 즉 포트폴리오 말고도 넘어야 할 산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포트폴리오에만 열중하느라 인터뷰 연습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포트폴리오가 전반전이라면, 인터뷰는 후반전 때로는 연장전까지도 간다는 걸 명심하자.
2) 방문객을 분석하지 않는 것
포트폴리오를 찾는 방문자를 분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포트폴리오의 유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 포트폴리오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이해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나는 Google Analytics를 연동하는 것을 추천하는데, GA라고도 불리는 이 웹 로그분석 도구를 활용하면 방문자가 어느 루트를 통해 들어왔는지, 몇 분을 머무는지, 어느 페이지에서 나갔는지, 심지어 사용하는 브라우저 크기는 무엇인지 등 너무나 유익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약 방문자의 상당수가 나의 대표 프로젝트 페이지에서 1분도 머무르지 않는다면, 그 말은 곧 내 작업물이 매력적이지 않거나 보여주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방문자의 행동 패턴을 파악한다면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3) 모든 프로젝트에 완벽을 기울이는 것
내가 GA 분석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80프로 이상의 방문객이 단 1-2개의 프로젝트만을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면접으로 넘어갔던 경우는 대략 짧게는 3분, 길게는 10분까지도 머물렀지만 여전히 보는 갯수는 3개 이상을 넘지 않았다. 그 많은 작업물 중에 보는 게 1-2개라는 건, 다시 말하면 가장 자신 있는 프로젝트 1-2개만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모든 걸 신경 쓰는 것보다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인터뷰를 가도 2개 이상 발표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완벽을 추구하느라 중요하지도 않은 페이지에 에너지를 쏟지는 말자.
4) 포트폴리오 디자인에만 집착하는 것
나를 포함한 많은 초보자들이 하는 실수가 작업물의 퀄리티가 아닌 포트폴리오 디자인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 범했던 실수인데, 의외로 포트폴리오 사이트 자체는 평범한데 안의 내용물이 훌륭한 경우가 훨씬 낫다. 결국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업을 발표하는 것이지 포트폴리오 ‘사이트’ 를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어쩌면 내 포트폴리오 사이트가 별로여서가 아니라, 그냥 내 디자인이 별로여서 연락이 안 오는 걸 수도 있다.
5) 꽁꽁 숨기는 것
포트폴리오를 나와 지원하는 회사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남이 내 거를 보는 게 싫어서 포트폴리오 자체는 숨기는 경우인데, 이런 걸 보면 참 안타깝다. 포트폴리오는 나의 디자이너로서의 나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보이는 자기소개서’이다. 널리 알려도 모자랄 판에 꽁꽁 숨긴다면 누가 찾아주겠는가. 힘들게 작업한 디자인들, 널리 널리 알리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말자.
나의 경우 홍보목적으로 올렸던 포트폴리오가 취업 막판에 Bestfolio.com에 선정되어 너무나 감사하게도 메인페이지에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트래픽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하면서 인터뷰 제안도 따라왔다. 일단 눈에 띄어야, 지나가는 기회도 잡을 수 있다.
#Tip. 포트폴리오 피드백은 어디서 받을까
Amazing Designer People List라는 비영리 디자인 커뮤니티에서는 필드에 있는 디자이너들이 포트폴리오, 인터뷰, 커리어 등의 멘토링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나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최근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많이 보이는 추세이다.
https://www.adplist.org/
포트폴리오는 정말이지 끝이 없는 늪 같다. 고치고 고쳐도 늘 아쉽고 바꾸어야 할 부분이 보이는 끝나지 않는 숙제. 하지만 절대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숙제를 하는 과정에서 방문자 수가 늘 때마다, 이탈률이 줄어들 때마다 나만 아는 희열과 성취감에 기뻐하기도 했다.
포트폴리오는 나와의 싸움이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인터뷰 숫자가 본인이 체감할 만큼 확 늘어나는 것이 보인다. 그러니 그때까진 힘들더라도 공을 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다 보면 어느 순간 기회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