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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개 Mar 26. 2022

나를 인터뷰해 듀오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것


MBTI를 좋아하진 않지만 굳이 밝히자면 나는 E - 외향형(Extroverted)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그럭저럭 대화를 하는 게 불편하지 않고 (그렇다고 낯가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주말 중 하루는 무조건 나가야 하고, 복잡한 설명을 읽느니 일단 시작하고 보는 편이라 요리든 조립이든 순서가 중요한 것들엔 영 소질이 없다. (그런 내가 지금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니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이런 내가 자발적 잠수행을 택할 때는 주로 무언가 몰입하거나,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이다. 특히 뭔가에 몰두하면 누군가를 만나고 얘기하고 에너지를 주고받는 모든 일이 한순간에 피곤해져서 SNS도 끊고,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가고는 한다. 작년이 딱 그랬다.


2021년 1월부터 3월, 나의 일상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은둔’이었다. 졸업 후 친구들과 조촐한 저녁을 먹은 뒤로 3개월 간 아무도 만나지 않으며 은둔형 취준생의 길을 걸었으니까. 당시 일기를 보면 일주일간 유일하게 대화한 사람이 아마존 딜리버리 맨이라고 적혀있기도 하다. 외노자가 되고 싶다고 온 내가 히키코모리가 될 줄이야.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이 방에서 2년을 살았다고 하면 모두가 놀란다. 지금 이걸 보는 나도 내가 놀랍다.



170 스퀘어 핏, 한국으로 치면 약 5평 정도 되는, 부엌 없는 방 한 칸에서 기약 없는 구직활동을 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은 아니다. 나는 막막했다. 아니, 단순히 막막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것 같다. 막막함의 정도가 너무 막막해서 도무지 가늠이 안되었다고 해야 할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졸업은 진작에 했고 무슨 자신감으로 OPT 날짜를 참 빨리도 설정해놔서 이미 90일 카운트 다운은 시작된 상황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시국에 막 학교를 졸업한, 경력 없는 신입을 위한 자리는 거의 없었다. 탈락 메일은 또 어찌나 자주 오는지, 나중엔 친구와 누가 더 많이 떨어졌는지 내기를 하는 상태에 까지 이르렀다. 결국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힘든 것 같아.”



힘들면 힘든 거지 힘든 것 같다는 또 뭐였을까. 아마도 힘들다고 생각하면 진짜 힘들어진다고 믿어서 나는 끝까지 이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한국의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결국 입 밖으로 뱉어버린 거다. 터져버린 눈물과 함께. 나의 아지트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며, 나는 힘들었던 한국에서의 취준생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도 힘들었는데 왜 지금은 더 힘든 건지, 나이는 더 먹었는데 왜 상황은 더 나빠진 건지. 부끄럽지만 아주 잠시, 나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직장생활 5년 넘게 한 30대가 그런 것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지겨울 정도로 한참을 멍을 때리다, 생각했다.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리라.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었다.


자주 가던 이 공원에서 나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명상을 하기도 하고 과제를 하기도 했다.




할 수 있었던 것들



1. 질문 리스트 만들기

인터뷰 질문 리스트는 사실 졸업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많은 학생들이 실수하는 부분이 인터뷰 준비를 인터뷰가 잡힌 뒤에 시작하는 것이다. 내 경험상 이건 너무 늦는다. 네이티브가 아닌 이상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반드시 평소에 훈련을 해 놓아야 한다. 나는 인터뷰에서 나올 만한 질문들을 모조리 모아 리스트를 만들고 매일 3-4개씩 답변을 만들어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만들었던 Question List


2. 포트폴리오를 놓지 않는 것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인터뷰 준비를 병행하면서 포트폴리오를 계속 개선해나갔다.  좀 더 나은 레이아웃은  없는지, 유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 비주얼을 더 고칠 게 있는지 등 개선 요소들을 멘토링을 받아가며 고쳐나갔다.



3. 지원할 회사를 더 찾는 것

한국에서 써먹었던 방법을 되풀이하였다. 내가 관심 있고 내 경력을 어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그 회사의 디자이너에게 콜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실제로 난 이렇게 해서 인터뷰를 보거나, 인터뷰는 보진 못했지만 포트폴리오 리뷰를 받거나, 혹은 referral을 해주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4. 다양한 버전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준비하는 것

인터뷰가 잡히면 대개 최소 2번 이상의 프레젠테이션 면접을 보게 된다. 보통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나, 디자인 챌린지가 있는 경우 그것을 발표하기도 하는데 이를 위해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준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포트폴리오 사이트 이상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애를 먹었다. 회사마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1시간의 발표를 하게 되므로 다양한 버전으로 준비를 하고,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5. 연습 또 연습

총 3가지 방식으로 연습을 했다.


 1) 스터디그룹

친구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일반 면접, 화이트보드 챌린지, 앱 크리틱을 실전처럼 해보고 서로 피드백을 주었다. 이것의 장점은 자료 수집이 용이하고, 특히 앱 크리틱의 경우 다른 친구들이 하는 걸 관찰하며 내가 놓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2) 실무자와 하는 연습

 ADP (Amazing Design People)에서 만난 디자이너, 그리고 평소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 몇 분에게 모의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이렇게 하면서 프레젠테이션 스토리 흐름을 잡고, 예상 질문과 답변까지 준비하였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이 시기에 멘토들과의 만남은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3) 원어민 튜터와 프레젠테이션 집중 훈련

네이티브가 아닌 내가 쓰는 영어가 부자연스럽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기에 이 부분을 네이티브에게 교정받고 싶었다. 당시 내가 썼던 서비스는 링글인데, MBA 등 해외의 유명 대학을 다니는 튜터들과 수업을 하며 영어를 교정하는 것이다. 사실 나에게 링글은 아픈 기억(예전에 인턴 자리를 문의했다가 철저히 무시당한 슬픈 이야기)을 준 회사지만, 내 영어를 좀 더 고급지고 원어민스럽게 교정하는 데에 도움을 받은지라 주변에도 여러 번 추천을 하였다. 아쉽게도 디자인 전공 튜터는 없었지만, 어차피 좋은 프레젠테이션은 결국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도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4) 그 밖에..

코로나 시기인지라 모든 인터뷰는 화상으로 진행되었는데,  면접을 보기 위해 쓰는 소프트웨어는 Zoom, Google Meet, Webex, Teams 등 너무 다양하고 회사마다 쓰는 툴도 다르다. 보통 처음 소프트웨어를 켜면 화면 설정 등을 세팅해야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인터뷰 도중에 그런 창이 뜨면 당황하게 되니 반드시 미리 설치해서 테스트해보기 바란다. 나의 경우 친구에게 부탁해서 화면이 잘 보이는지, 슬라이드가 잘 넘어가는지, 프로토타입은 끊기지 않는지 등을 체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의 인터뷰 리허설을 도와준 친구 S양 사랑합니다.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한 지 한 달 즈음되자 드디어 기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1월 중순을 시작으로, 11월에 끊겼던 인터뷰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고, 취업을 마무리 지은 3월 중순에는 과거에 해놓은 전적(?)들이 터지면서(공개된 플랫폼에 올린 케이스스터디의 트래픽 증가 + 내 포트폴리오가 bestfolio사이트에 소개 된 것) 하루에 4곳에서 인터뷰 제안을 받은 적도 있다.


나는 노력한다고  잘된다고 믿는  긍정인이 아니다. 오히려 결국 모든  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한  같다. 어차피 운이라면, 그냥  편히 내가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마음 편할 테니까. 그래야 안됐을  ‘  있는   했는데 결국 안되더라' 라며 쿨하게 물러설  있을 테니.


시간은 마침내 3월, 나의 기나긴 '실리콘밸리 외노자 되기'의 여정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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