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신입사원의 시각
싱가포르에 온지는 어느새 한 달이 다되어 간다.
처음 1-2주 동안은 날씨와 음식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그 성과는 항상 가디건과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깨달음과 저렴하고 맛있는 호커센터와의 높은 친밀성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3주 차부터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자격증이 있어서 회사 지원을 받고 학원을 다니고 시험공부하는데 온 정신을 쏟았다.
그리고 이번 주, 신입사원으로서 첫 주가 지났다.
아- 할 말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아서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될지 모르겠는 이 기분.
내 근무 이야기는 차차 풀어나가기로 하고,
보다 중요한 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싱가포르의 모습이 과연 본인이 근무하기에도 좋은 것인지 미리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벗어나고 싶어서, 영어권이라 그나마 의사소통이 될 것 같아서, 안전한 나라라서 라는 이유로만 싱가포르에서 근무를 희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 인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이곳에서 생계를 꾸린다는 것은 싱가포르를 깊게 이해하는 것에 바탕을 두어야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도 깊게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이곳에 왔고, 현지에서 직접 느끼는 싱가포르는 단연 책으로만 혹은 인터넷 정보로만 듣던 것과는 상이한 부분들이 있다.
그것들을 낱낱이 살펴보고 전달하기 위해 지금까지 내가 느낀 싱가포르의 근무환경을 토대로 싱가포르 근무 적합성을 테스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1. 나는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한 곳에 살기를 원한다. O X
2. 나는 워커홀릭처럼 살고 싶다. O X
3. 나는 여성의 파워가 강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O X
4. 나는 법이 엄격하여 안전하고 깨끗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O X
5. 나는 한국 문화를 홍보하고 알려주는 것을 좋아하고 보람을 느낀다. O X
6. 나는 한적한 것보다 시끌벅적한 것을 더 좋아한다. O X
7. 나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O X
8. 나는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고 싶다. O X
이제 답변을 정리해보자면,
1-8번까지 다 O를 선택했다고 가정하고 그 해설을 풀어나가 보겠다.
1.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한 곳에 살기를 원한다면 싱가포르는 적합한 나라가 아닐 수 있다. 익히 알고 있듯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물가가 제일 비싼 나라다. 가장 많이 쓰는 식비를 예로, 별다방과 콩다방이 정말 흔하게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몇백 원은 더 비싸다. 아마 우리는 통신사 할인 각종 프로모션 등으로 더 저렴한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별다방 팬이었던 나로서는 여기가 더 비싸게 느껴진다. 밥 값은 천차만별이라 비교조차 불가능하지만 유명한 식당은 2인분에 10만 원을 육박하는데도 많다. 즉 평균적으로 좀 더 비싸다.
2. 워커홀릭처럼 살고 싶다면 싱가포르가 적합한 나라가 아닐 수 있다. 우리 회사를 예로 들면 본인에게 정해진 할당 업무량이 있는데 그것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하지 못하면 자발적 오버타임 워크로 간주된다. 이는 결국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의 업무를 못했다는 뜻이 되며 반복될 경우 열심히 하는 사원이라기보다 오히려 게으른 사원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쉽다. 정해진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게 핵심이고 야근한다고 나의 노고를 더 알아주고 이런 건 절대 없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이 끝나면 칼퇴는 옆에 보스가 일하고 있어도 가능하다. 눈치 안 보고 얄짤없이 떠난다 나는.
3. 여성의 파워가 강한나라는 싱가포르가 아시아에서 최고일 듯하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직장인 여성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일도 정말 열심히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싱가포르 정부는 여성을 최고 약자라 여겨 법의 보호가 잘되어있다. 법의 안전한 굴레 안에서 그들은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 부서 여직원들은 30대가 되어도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으며, 심지어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4. 싱가포르는 법이 매우 엄격하다. 우리나라에는 벌금이 3,5,7만 원짜리도 많지만 여기는 벌금이 몇백만 원인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단 횡단하는 사람은 있지만 나는 무서워서 못하겠다. 거리도 정말 깨끗하고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본적이 정말 손에 꼽는다. 쾌적한 거 하나로는 최고다.
5. 싱가포르인들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드라마도 많이 물어보고, 음식도 많이 물어본다.
그런 것을 알려주고 민간 외교관으로서 역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싱가포르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보람도 많이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정체성이 담긴 문화를 그들이 좋아해 준다면 그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환영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이점이 많다.
6. 시끌벅적한 것은 장소 나름이지만 대체로 싱가포르는 한적하다. 우리나라의 명동 같은 오차드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좀 시끌벅적한 편이지만 그 외에는 거의 한적한 편인 것 같다. 특히 주거지역은 정말 조용하고, 시설도 잘 되어있어 산책이나 운동하기에 좋다.
7. 싱가포르에서 나만의 공간이 있는 집은 일단 아주 큰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일단 원룸이라는 개념이 없고 대부분의 외국인 직장인들은 룸 렌트를 한다. 나 혼자 살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집을 홀 렌트를 해야 되는데 그만한 돈도 없을뿐더러, 홀 렌트해도 모든 방이 크게 쓸모없다.
8. 싱가포르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산다.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 서양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일을 하고 거주하고 있다. 비율을 일일이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골고루 많이 보이며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한국, 일본, 스위스, 네덜란드, 인도, 프랑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같은 영어라도 발음이 달라서 좀 힘들 때도 있지만, 다이내믹한 환경이 좋다면 싱가포르가 적합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싱가포르 혹은 다른 나라에서 근무를 꿈꾼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실적 이유야 무엇이든 분명 더 나은 행복을 위해서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런데,
학생일 때가 더 행복하고 직장인일 때는 덜 행복하며
한국에 있을 때는 덜 행복하고 싱가포르에 있을 때는 더 행복하다 라는 건
행복의 기준이 외부에 있다는 얘기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만약 한국에서 취업을 했다면, 그 나름의 행복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 더 행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나는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내면의 행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를 사랑하고, 내가 속한 곳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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