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지난겨울 여행을 시도하였으나 추워 죽을 수 있다는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미루었다가 날씨가 풀리고 5월을 맞아 5월 5일 1박 2일 오대산 여행을 계획하였다.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탐방로 지도를 받을 수 있다.
다양한 등산 코스 중에서 월정사부터 상원사까지로 이어지는 선재길코스가 가장 유명하다. 난이도가 쉬워서 아이들도 같이 갈만하고 풍광도 매우 예쁘다. 특히 단풍철에 절경이라고 한다. 선재길로 상원사까지 천천히 종주하고 상원사에서 버스로 하산하는 코스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선재길코스의 끝인 상원사까지 가려면 무려 8km 이상으로 만만히 봐서는 안된다.
애당초 우리의 계획은 단풍철이 아니기에 선재길을 패스하고 상원사에 주차를 한 뒤에 적멸보궁을 찍고 마지막이 험난하기로 유명한 비로봉까지 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종일 부슬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등반은 어렵다는 판단 아래 비 내리는 선재길을 종주하기로 한다.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 선재길.
다들 우산을 쓰고 걸었지만 난 우비를 입고 비를 맞으며 걸었다.
나는 비가 오는 것을 좋아하고 비를 맞는 것도 좋아한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세상이 말라버리고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느낌에 무섭다. 미국 서부를 여행했을 때 설명할 수 없이 답답하고 침이 마르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이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면 세상이 촉촉해지는 기분이 들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나쁜 것들이 다 씻겨 내려가는 느낌에 시원하다.
서울에서는 마음껏 비를 맞기가 어렵다.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이미 나쁜 것들을 다 머금은 물로 샤워를 할 수는 없다. 공기 좋은 오대산 숲 속에서는 그런 걱정 없이 비를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리는 비에도 오대산의 길한 기운이 스며 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터벅터벅, 산 길 걷는 발자국 소리가 너무 좋다.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여기가 한강 물의 수원이라고 하니 우리 집 근처를 지나가겠지?
내려오는 길에 월정사에 들렀다. 내리는 비로 선재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는데 월정사에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유명한 석탑도 보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대산 등반이었다. 오대산 근처 숙소를 물색하였는데 평창 알프스마을의 근사한 펜션을 알게 되었다. 따로 마련된 바베큐장에서 눈,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도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숙소 내부도 매우 아늑하고 편안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 꼭 한번 다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