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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mindfulness May 11. 2024

BURNING RUN 2024

나의 첫 7km 마라톤 대회


1년 전까지만 해도 마라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봉주 선수 밖에는 없었고 마라톤 대회는 마치 올림픽처럼 나와는 가장 상관없는 세상의 단어일 뿐이었다. 달리는 것은 좋아했지만 엄두를 수조차 없었기에 마라톤 대회는 감히 로망이나 버킷리스트조차 아니었다. 


마라톤 대회 하면 무조건 42.195km 풀코스만 있는 줄 알았지만 5킬로니 10킬로니 하는 것들도 내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작년 여름, 친하게 지내던 가족이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나도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 들던 와중에 강남구에서 가을에 열리는 대회 소식을 역시 우연히 듣게 되었다. 출발지가 봉은사역이라 집에서도 가깝고 아이와 어르신들도 많이 참여하는 대회라고 해서 용감하게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5km을 신청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거리를 측정하며 달리는 것을 시작해 보았다. 


처음 달리는 날,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얼마나 달려도 되는 몸뚱이인지 조차 몰랐기에 거의 걷는 속도로 달려보았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여서 4~5km를 아주 천천히 달렸는데 중간에 쉬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게 힘들기는 힘들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두 번 정도 연습을 하고 10월 초 대회에 나갔다. 그렇게 많은 마라톤 동호가 있는 줄은 몰랐다. 대회 당일 출발 시간이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정신없이 달렸고 돌아와 보니 비가 그쳐있었다. 정말 사람이 많이 모였는데, 잘 달리는 그리고 즐겁게 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니 자극이 되었다. 기록은 비루했지만 30분 대에 들어왔다는 것이 나에게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나 같은 사람도 마흔이 넘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수 있구나, 자신감이 생겼다. 



대회 이후 날이 바로 많이 추워졌고, 추운 겨울에도 한 달에 세 번 정도는 한강에 달리러 나갔다. 런데이 앱도 깔고 달리기를 위해 버즈도 구매하였다. 나는 체력에 비해 천천히 달리는 타입이다. 


나의 MBTI는 ESTJ인데, 그중에서도 S, T, J는 매우 강하게 발현되어 있다. 인간적인 면이 좀 부족하고 기계 같은 면이 있다. 한강변을 달릴 때에는 보통 5~6km 정도를 달리는데 쉬지 않고 달려도 땀이 많이 나고 기진맥진 해질 정도로 최선을 다해 달렸다는 느낌이 없는 것이다. 사실 거의 별로 힘들지 않은 날이 많았다. 그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내린 답은 내가 마지막에 체력이 떨어질 것을 지나치게 대비해서 에너지를 너무 아끼는 것이었다. 조금 더 써도 끝까지 달릴 수 있을 텐데 혹시 끝나기 전에 바닥날까 봐 몸이 속도와 에너지를 컨트롤하는 느낌이랄까? 


이 저항감을 극복하고 속도를 올리는 것이 힘들었다. 처음에 비해 많이 올리지도 못했지만 연습을 하면서 아주 조금은 속도를 올렸다. 초반 스퍼트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 때문에 중간까지는 해왔던 대로 천천히 달리고, 중간 지점 이후부터 약간 속도를 올리고 마지막에 빠르게 달리는 방법을 연습했다. 런데이 앱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추운 겨울 동안은 대회가 열리지 않는다. 어느덧 2024년이 되어 날이 따뜻해졌다. 3월 초 봄 대회를 신청해 보려고 검색을 했더니 이미 4월까지의 대회들은 다 마감이 된 상태였다. 대회가 대부분 토요일이었는데 토요일 근무라 휴가를 내야 되어서 대회마다 다 나갈 수는 없고, 7km에 도전해보고 싶어 버닝런 대회를 선택하여 신청을 하였다. 


연습할 때에도 7km까지 쉬지 않고 달려본 적은 없었다. 4월에 훈련을 좀 했어야 했는데 아이가 중간고사 때 생각보다 나에게 의지를 많이 해서 뛰러 나갈 여유가 없었다. 연습도 많이 못하고 7km라는 숫자에 걱정도 되고 부담도 있었다. 상암동 평화공원에서 스타트였는데 집에서 멀어 아침에 일어나 가는 것도 긴장되었다. 버닝런 대회는 지난 강남구 대회에 비해 20대 젊은 러너들이 많았다. 


9시 정각에 10km가 출발하고 5분 뒤 출발했다. 출발 후 달리면서 아, 그냥 5km나 뛸 것을 괜히 7km를 신청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페이스가 너무 빨랐다. 긴장된 마음이 몸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시작하자마자 힘이 들었다. 하지만 나를 지나쳐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내며 걷지만 말고 들어오자고 생각했다.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1km 사인이 보였고 이후에 안정을 찾았다. 이후에는 천천히 내 평소 페이스대로 아무 생각 없이 달렸다. 마지막 1-2km만 속도를 좀 내고 그전까지는 그냥 천천히, 걷지만 말고 가자고 스스로에게 얘기했다. 무념무상에 도달하니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5km 반환점인 2.5km가 지나고, 3.5km에서 돌아 나오면서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없겠다 안도했다. 하지만 평소에 뛰어본 적이 없는 7km는 역시 힘들었다. 2km 남았을 때부터 빠르게 달리자 생각했지만 5km가 넘으니 다리가 무겁고 숨이 가빠와서 지금까지 보다 속도를 더 내기는 힘들었다. 특히 1km를 남기고 한참을 이어지는 오르막길 브리지에서는 거의 걸을 뻔했다. 오르막길 브리지를 통과하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제는 마지막 코스, 공원이었다. 

 


체력을 다 쏟아부은 상태에서의 막판 스퍼트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이제까지 공들여 90퍼센트를 이루었고 10퍼센트가 남았는데, 이미 에너지는 고갈되어 더 이상 최선을 다 하기가 쉽지 않을 때, 포기를 할 수도 없고 집중력은 떨어진 채 남은 태스크를 정신없이 후다닥 대충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물질적인 에너지가 이미 다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막판 스퍼트는 체력 싸움이 아니다. 마지막 10퍼센트는 오로지 정신력의 싸움이다. 


컨디션이 좋을 때 최선의 퍼포먼스를 만들어 가는 것만도 대견한 일이다. 하지만 더 이상 못 하겠다 생각이 될 때 나를 다시 세팅하고 보통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것은 보통의 저력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단지 내 능력보다 아주 천천히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지치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더 이상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안주하지 않고 대충 버티다가 끝내버리지 않고 내 안에서 숨겨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의지, 그것이 진정한 투지이고 끈질김이다. 피지컬 100을 보면서 메달리스트들의 퍼포먼스가 경이롭다고 느꼈던 점이다. 누구나 이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그때, 포기하지 않고 놀라운 투지로 상황을 바꾸는 그들의 힘. 

 


나는 막판 스퍼트를 잘 해내지는 못했다. 속도는 오히려 마지막에 약간 떨어졌지만 전체적으로 전반부와 후반부 페이스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고 47분에 7km를 완주하였다. 평소 연습 때 페이스에 비하면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역시 연습 때에도 좀 속도를 올려 힘들게 달릴 필요가 있다. 직전 긴장감에 신청을 후회하는 마음도 아주 살짝 들었지만, 완주하고 나서 얻은 뿌듯함과 성취감은 나에게 귀한 활력을 주었다. 별 것 아닐지 몰라도 내가 대견하고 스스로를 더 좋아할 수 이유가 된다. 또한 달리기를 즐기는 러너들의 모습에 긍정적인 자극을 많이 받고 왔다. 



이미 90퍼센트를 달리고 나서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남은 10퍼센트에 헌신하는, 나에게 부족한 그 정신력을 달리기와 내 삶에서 앞으로 훈련하고 기르고 싶다. 


아마 내가 뛸 다음 대회는 가을이 될 것이다. 7km가 있는 대회는 많지 않아 5km나 10km를 신청해야 할 텐데 여름동안 연습을 한다고 해도 10km 도전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 우선은 5~7km를 뛰며 속도를 높이는 훈련을 하려고 한다. 

 


달리기는 참 좋은 취미이다. 달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달리고 나면 성취감에 내가 더 근사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아무 생각 없이 고민은 잠시 내려놓고 달리다 보면 산재한 어려운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하루 달리는 것으로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도 신기하게 내가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몸만 변하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변한다. 참 신기하다. 신체적으로 달리기가 무리가 되는 사람도 자세와 속도와 달리는 시간을 각각 자신의 상태에 맞출 수 있다. 근력을 키움으로써 발목과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고 달릴 수 있다. 달리기가 자신 없어 걷는 사람은 단지 걷는 속도로 딱 5분만 달려보는 것으로 러닝을 시작해 보기를 추천한다. 생각보다 오래 할만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 한계를 매번 뛰어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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