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핑계 대지 마!
나이를 주제로 얘기를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개개인들의 많은 애환과 이 사회의 어두움을 안고 있는 단어이다.
이 사회에 나와 다른 집단에 대한 다양한 혐오와 차별이 존재하지만,
노인에 대한 차별은 요절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면서도
세월이 흐르기 전에는 누구도 미리 느껴볼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좀 특별하다.
꼰대 같지만 누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윗 선생님들이 주니어 교수에서 시니어 교수가 되면서 호떡 뒤집듯 자신의 가치관을 뒤집어엎는 것을 많이 봤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서 내로남불인가? 했지만 이해한다.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뒤늦은 사십춘기의 골짜기를 지나 40대의 중반을 지나면서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나의 느낌은
감정의 동요가 줄고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
누가 뭐라고 해도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며 가던 길을 아무렇지 않게 가고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신중해지는 것 등등.
그래, 나이 듦이 이런 거지, 참 좋다. 하다가도
인생에서 기쁨과 절망을 예민하게 느끼지 못하고 무미건조하게 무표정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뭇잎만 날아가도 자지러지게 웃고, 누가 조금만 자극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부르르 떨던 어린 날의 감정은 미성숙한 게 아니라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마치 나의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을 더 이상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오늘 대한민국은 갈라 치기의 장이다.
다른 지역, 다른 성별, 다른 직역에 대한 혐오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씁쓸한 것은 노인에 대한 혐오이다.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키오스크 앞에서 버벅댄다고 답답해하고 더러워하기도 한다.
내가 있었던 직장에서는 정년을 앞두고는 그렇게 잘 나가던 분들도 점차 무능한 뒷방 늙은이로 포지셔닝되고는 했다. 65세면 너무도 정정한 나이인데도 말이다.
내가 나이가 들면 어떨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저렇게 나이 들면 참 멋지겠다는 생각이 드는 모델이 내 주위에는 참 없었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시작을 할 용기가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점점 몸이 삐그덕 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문화적 가치를 널리 전파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조차도 내 나이를 의식해서 나이로 누군가에게 군림하려고 하거나 자존심을 내세우고 대접받으려고 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전통이 강한 사회였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교수님들에 대한 권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었다. 오랜 경험과 연륜이 있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존경했고 불합리한 이슈를 당해도 무조건 참았다.
하지만 최근 10-20년 사이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연장자의 권위에 대해 객관적인 잣대로 따지고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동안의 장유유서의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문제의식과 불만이 오히려 역으로 강하게 표출되어 노인 혐오와 세대 간 갈등이 표면 위로 떠오르는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체력과 에너지가 떨어지고 새로운 일에 대한 적응력과 대처능력도 이전만 못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고령자들이 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경험과 연륜의 가치를 알아주고 존경을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존경이 사라지면서 노인은 무능하면서 내 세금을 갉아먹고 피곤한 존재로 비치는 듯하다.
존경은 나이가 아니라 태도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는 윗사람을 꼰대, 틀딱으로 부르기도 한다. 장유유서를 가치관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윗세대들에게도 이런 변화는 아마 적응하기 힘들고 서러울 것이다.
미국은 애초에 능력 중심의 개인주의 사회였다. 나이가 많다고 자동적으로 권위를 가지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령자에 대한 차별에 우리나라보다도 더 취약한 역사를 지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노동 시장에서의 연령 차별이 두드러진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이다. 가뜩이나 일자리가 부족한 시기에 젊은 노동력이 선호되었기 때문에 고령 노동자는 해고에 취약해졌다. 1950~60년대 역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직 압박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 그리고 1967년 연령 차별 고용법(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이 제정되었다.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나이 든 사람들이 catch up이 어려워 쓸모없는 존재로 비치는 사회적 인식이 미국에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령에 의한 차별을 인지하고 시스템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나 보다.
우리나라에도 그 많은 차별 금지법 중 하나로 그동안 권위와 장유유서 가치관에 기대어 유지되어 오던 노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곧 포함될까.
나는 완전히 끼인 세대이고 나이로써 권위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윗 분들을 열심히 모시는 사이에 나이는 먹어 기성세대, 구세대가 되었다.
개인적인 부족함 때문인지, 나의 애매한 경험과 연륜이 권위는 물론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자괴감에 괴로웠던 적도 많다.
그렇지만 이렇게 저물어갈 준비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고령 인구가 더 많아질 텐데 이 사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세대 간의 갈등을 풀어갈지, 또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어려운 숙제이다.